[The W]우리가 "샘오취리 깜XX" 할때…손흥민도 당하고 있었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홍순빈 기자 2021.04.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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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차별과 혐오, 우릴 겨눈다①

'내로남불'이 인종차별과 혐오에도 나타난다. 국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면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에게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분노한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를 겨눈 인종 차별과 축구 스타 손흥민에게 벌어진 혐오 표현이 대표적인 예다.



일부에서는 이방인의 실수나 잘못을 혐오의 핑계거리로 삼는다. 전문가들은 개인을 향한 정당한 비판과 인종 전체를 겨냥한 비난을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를 넘은 악성 댓글은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샘 오취리 향해 '깜XX' 할 때, 손흥민은 영국서 '개나 먹어라' 시달렸다
[The W]우리가 "샘오취리 깜XX" 할때…손흥민도 당하고 있었다


지난 9일 한 고등학교 학생들과 '블랙페이스 논란'으로 갈등을 빚었던 방송인 샘 오취리가 유튜브 영상을 게시했다.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한 지 8개월 만이다. 이 영상에는 5일만에 1만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 중 대부분은 "아프리카에나 가라" "깜XX" 등 흑인 자체를 비난하는 인종차별성 댓글이다.



비난 댓글을 단 대부분의 누리꾼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인종차별을 당할 만하니 당하는 것'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샘 오취리가 한국에서 방송 생활을 하는데도 한국인을 비하했으니 당연한 대가라는 논리다. 샘 오취리는 한국인을 설명할 때 눈을 찢거나 여성 방송인을 향해 성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사흘 후인 12일 영국 BBC는 토트넘 홋스퍼의 축구스타 손흥민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손흥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 얼굴을 가격당해 쓰러졌으며, 이 파울로 맨유는 득점을 취소당했다. 분노한 맨유 팬들은 손흥민의 SNS에 "개나 먹어라" "눈 찢어진 중국인"이라는 인종차별성 글을 남겼다.

인종차별은 스포츠계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난 11일(한국시간) 방송된 칠레 TV쇼 '미 바리오(MiBarrio)'에서 진행자들이 BTS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한 코미디언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중국어 발음을 흉내냈고, "나 백신 맞았다"는 뜻이라며 코로나19(COVID-19) 상황에 빗대 조롱했다. 이에 분노한 한국인들은 "스페인에 몇 백년이나 지배당한 잉카인들"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도 인종차별 자행하면서 자각조차 못한다"
논란이 됐던 한국과 영국, 칠레 모두 인종차별을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해외서 자국민이 당하는 차별에 분노한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영국은 자국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지난달 영국 정부 산하 '인종과 민족 격차 위원회'는 영국 내 고용·교육·사법 분야 등의 실태조사를 근거로 '영국에서 인종차별이 자취를 감췄다'고 자평한 바 있다. 위원회가 작성한 250쪽 분량의 보고서에는 "영국은 백인이 주류인 다른 국가의 모범"이라는 표현까지 담겼다.

한국 사회 역시 스스로 '인종차별 청정국'이라고 평가한다. 세계 가치관조사(WVS)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인 124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93%가 '우리 사회에 인종차별이 없거나 매우 적다'고 응답했다. 전체응답자의 89%가 '외국인을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인종차별을 저지르면서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손흥민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사여도 외국에서는 언제든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합리적인 비판과 특정 인종에 대한 비난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했다.

"헌법에도 나온 '한민족 의식', 다른 인종 차별하는 원인"

토트넘 핫스퍼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SNS에 달린 인종차별성 악플들. / 사진 = 인스타그램 갈무리토트넘 핫스퍼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의 SNS에 달린 인종차별성 악플들. / 사진 = 인스타그램 갈무리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의 강한 공동체의식이 다른 인종을 배척하려는 결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정인의 문제를 계기로 그 개인이 속한 인종·국가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는 사례 역시 일부 학생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비난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김태환 이민정책학회 회장은 "우리 사회는 헌법 전문에 '민족의 단결'이라는 말이 나와 있을 정도로 공동체의식이 공고한 사회"라며 "어릴 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는 심리가 학습돼 사회 전반적으로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또 "이런 사회에서 이방인의 잘못은 혐오의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을 겨냥한 악성 댓글이라도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법무법인 유의 박성현 대표변호사는 "인종을 이유로 특정 인물에게 욕설이 섞인 비하 발언을 하는 것은 사이버모욕죄에 해당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며 "피해자가 외국 국적이라고 해서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유튜브 등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의 경우 실질적인 처벌까지 이루어질 가능성은 낮다. 경찰 관계자는 "유튜브같이 외국에 서버를 둔 사이트는 수사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처벌 대상에 해당하더라도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국 플랫폼을 통한 악성 댓글의 근절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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