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돈 수백억 빠져나가" 중국인 '코인 환치기'…대책이 없다

머니투데이 김상준 기자 2021.04.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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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2차 코인광풍에 또 호구된 K-코린이②

편집자주 제2차 암호화폐(가상자산) 광풍이다. 우리나라에선 유독 가격 널뛰기가 심하다. 국내에서만 붙는 웃돈,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탓이다. 외국환규제에 따른 암호화폐의 국내외 가격 차이로 외국인 등 특정계층만 이득을 본다는 지적이다.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국내 암호화폐(가상자산)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현상, 즉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중국인들의 무더기 환차익거래(일명 환치기) 정황이 드러나면서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규제 법이나 정부 가이드라인은 없어 '해외송금'을 일단 막는 수준에 그친다.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관리 지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인들의 환치기 정황은 4월초 포착됐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합산 국내 체류 중국인들의 중국송금액은 지난 9일까지 7270만달러(약 800억원)로 집계됐다. 3월 전체 송금액인 950만달러의 약 8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7영업일만에 중국으로 넘어갔다.



은행권은 이를 '암호화폐 환치기'로 봤다. 해외에서 암호화폐를 구매한 뒤 이를 국내 거래소로 전송해 국내에서 비싼 값에 팔아 원금과 차익을 중국에 보낸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인의 중국 송금은 김치 프리미엄이 일시적으로 20%를 넘은 직후인 지난 7일, 8일 급증했다.

현행법의 허점을 노린 수법이다. 외국환거래법상 건당 5000달러 이하, 연간 5만달러까지는 송금 사유 등에 대한 증빙 서류 없이 해외송금이 가능하다. 외국인의 경우 우리 국민과 달리 생활비 명목으로도 해외송금을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가상화폐 관련 해외송금을 정확히 걸러낼 수 없다.



은행들은 해외송금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중이다. 중국인들의 환치기 정황이 드러난 직후 5대 은행은 각 지점 창구에 '가상화폐 관련 해외송금 유의사항' 공문을 내려보냈다. 증빙 서류 없이 5만달러 이내 송금을 요청하거나 자금 출처·용처가 의심되는 경우 일단 거절하라는 내용이다.

비대면 해외송금 서비스도 규제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19일 비대면으로 국내에서 중국의 개인에게 송금할 수 있는 '은련퀵송금' 서비스에 '월 1만불 한도'를 신설했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개인별 연간 해외송금 한도인 5만달러 이내에서 건당 최대 5000달러씩 매일 1만달러까지 중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는 최근 '해외송금 이용 시 주의사항'이라는 게시글을 띄웠다. '해외계좌송금 보내기'와 'WU빠른해외송금 보내기' 서비스 이용 시 주의 거래로 판단될 수 있는 사례를 고객에 제시하고, 유의하라고 안내했다. 분할송금 등이 의심될 경우 카뱅은 전화로 상세 사유를 확인한 후 결과에 따라 서비스 이용 제한 등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은행들을 중심으로 관련 규제 법이나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장에선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규제에 법적 근거가 없어 은행들은 그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지 고민"이라며 "정상거래 고객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는 만큼 당국이 일괄 지침이라도 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관리 책임을 은행에 돌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 각 시중은행의 외환 담당 부서장들과 비대면 회의를 진행하고, 은행들에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암호화폐 관련 내부 통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 안에서 은행들이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문제인데, 당국은 대략적인 지침도 없이 은행들에게 '잘 막아보라'고 주문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소극적 대응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측면이 있다. 암호화폐 관련 대응은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기획재정부, 관세청, 경찰청 등 10개 부처가 담당하고 있어 주도적으로 개입하기 어렵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 내 부처 사이에서 암호화폐가 화폐인지, 금융상품은 맞는지 이견이 있다"며 "정의조차 없으니 담당 기관이 없고,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비판이 거세지자 금감원은 은행에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할지 검토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외 암호화폐 투자 목적의 송금거래인데, 수출입거래 등 다른 목적 거래인 것으로 가장한 해외송금 거래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응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가이드라인 제정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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