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예능 불사조가 전해주는 '찐'교훈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4.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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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집사부일체' 방송 캡처사진출처='집사부일체' 방송 캡처



지난 4월4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방송인 이경규는 ‘자연인’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최근 대세가 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긴 촬영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촬영 3시간 안에 분량을 뽑겠다”고 선언한 후 자신이 짜온 자연인의 콩트를 선보인다. 원래 ‘집사부일체’는 MC인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가 인생의 노하우를 한 수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경규는 스승의 진실된 모습이 강조돼야 할 이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가공된 이미지인 ‘자연인 캐릭터’를 들고 나왔다.

‘개는 훌륭하다’ ‘펀스토랑’ ‘도시어부’ 등 그의 모습은 2021년에도 여러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모르모트’ 권해봄PD와 함께 카카오TV ‘찐경규’를 만들면서 모바일 콘텐츠에도 나섰다. 많은 사람들, 특히 20대의 시청자들은 그가 이미 만으로 환갑을 넘은 60대인데다 1981년 제1회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경력 40년의 방송인인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이경규는 계속 대중의 곁에 머물렀던 셈이다.

기본적으로 ‘버럭’하는 캐릭터다. 화도 많고 독설도 많이 한다. 분을 못 참을 경우에는 후배에게 물리적인 응징(?)을 가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에 비해 그는 너무도 사건·사고가 없는 40년을 보냈다. 그 흔한 논란 한 번 겪은 적이 없었다. 한 때 ‘국장급 개그맨’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예능가 캐스팅을 좌지우지 했던 권력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그에게 불합리한 일을 당했다고 온라인에 토로하는 단 한 건의 ‘폭로’도 역시 없다.

대신 그 자리는 현란한 변신이 채웠다. 처음 이경규는 1980년대 당시 토크쇼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MC의 곁을 채우는 보조 MC로 출발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였던 주병진의 옆에 있는 식이다. 그렇게 연명하던 그가 크게 튀어오른 이유는 당대의 유행을 빨리 알아채고 반영했기 때문이다. 짜여진 대본으로 움직이는 예능가에서, 상황만 주고 돌발적인 사건을 만드는 방식으로 출연자의 진짜 반응을 보는 ‘몰래카메라’는 혁명적인 형식이었다.

사진제공=카카오TV사진제공=카카오TV

이런 부분에 흥미를 느꼈던 그는 1990년대 예능가의 주요 흥행공식이었던 공익예능에도 참여했다. ‘양심냉장고’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예능가의 흐름이 리얼버라이어티로 바뀌자 ‘무한도전’ 만큼 성공적은 아니었지만 ‘남자의 자격’에 참여하면서 흐름을 탔다. 이후 흐름이 관찰예능으로 넘어오자 ‘불량아빠 클럽’ 등에서 활약했다. 스튜디오든 야외든, MC든 패널이든 그가 있는 촬영장은 반드시 그를 중심으로 돌고 말았다.

이경규는 2016년 초 ‘무한도전’의 특집 ‘예능총회’에 출연해 “누워서 방송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이어 ‘마이리틀텔레비전’에 출연해 이를 구현해냈다. 또한 애완동물이나 낚시 등 예능이 특정한 코드를 가진 취미들로 분화하자 빠르게 그 흐름을 수용했다. 지금 눕방이나 반려동물 프로그램 그리고 취미 프로그램들은 예능의 대세로 올라있다. 그는 또한 운동선수들의 본격적인 예능진출을 예견했으며, 실제 씨름선수였던 강호동을 예능인으로 거듭나게 해줬다.

‘몰래카메라’가 유행하던 1990년대 이경규는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당대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관찰예능의 극치로 아예 MC가 없는 나영석PD 사단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면서 그의 말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 당대의 취향을 똑같이, 아니 반 발짝 빠르게 반영하고 통찰하는 그의 능력은 그 이후의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다.

사진출처='개는 훌륭하다' 방송캡처 사진출처='개는 훌륭하다' 방송캡처

다시 ‘집사부일체’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이경규는 제자들에게 빠르게 자연인의 집을 구경시켜준 후 텃밭도 보여준다. 텃밭에는 파인애플이나 통조림 등이 나온다. “길게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이승기의 질문에 “정을 주면 안 된다. 이 멤버 중에서 둘은 날아간다”며 농담 아닌 농담도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분량이 나왔다고 판단하지 미련없이 카메라를 벗어나 혼자만의 휴식을 갖는다.

이러한 자유로운 행보는 이경규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다. 그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콩트를 했지만 전하는 말들을 버럭하는 감정 속에 깊은 교훈을 묻어 놨다. 프로그램을 주무르다 못 해 그 안에서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거장의 풍모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이렇게 자유롭게 하면서도 한 번도 대중의 민감한 감성을 건드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자제의 능력도 갖고 있다.

분명 유재석의 시대도, 강호동의 시대도, 신동엽의 시대도 왔다가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경규의 시대가 저물겠느냐는 예상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예능의 태초에도 그가 있었고, 지금도 그가 있다. 예능이 당대의 유행을 반영하는 그릇이라면 이경규는 그 그릇을 자유자재의 손길로 빚어내는 도공과 같다. 1981년도, 2021년도 여전히 이경규의 시대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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