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코로나19 사태 2년차를 맞아 백신 확보가 급선무로 떠오르면서 지난해 마스크 부족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업인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공식 외교 채널을 통해 풀어야 할 부분은 공식적으로 접촉하면서도 기업 등 민간 채널과 손발을 맞춰 국가적인 사태 해결을 앞당겨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통상 현안에 밝은 한 인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수차례 반도체의 중요성을 얘기할 정도로 미국이 반도체산업을 안보 차원에서 바라보는 상황에서 백신과 반도체 스와핑은 한미동맹 차원에서 성사 가능성이 충분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정부도 백신 확보가 논의되던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는 이 부회장을 정부의 특사 자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인사는 "지난해부터 정부가 이 부회장과 일부 그룹 총수들에게 백신 확보 협력을 요청했는데 일정이 늦어지다가 이 부회장이 올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 사태 당시에도 일본 정·재계의 인맥을 통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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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이 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이었던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2011년 7월 유치에 성공한 뒤 "45대55 비율로 평창이 불리했는데 (최종 득표한 총 63표 중) 20~30표는 이건희 회장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백신 확보 외에 세계 주요국들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사활을 걸고 패권 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장수'를 복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수십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는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반도체 시장은 현재 세계대전 중"이라며 "세계 각국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을 모두 끌어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장수가 없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최근 경제 회복과 관련된 의견 청취를 위해 가진 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가 있었다"며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어서 관계 기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백신 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여론이 부각되면서 여당에서도 백신 특사 카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도체·백신 등과 관련한) 전 지구적 재난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며 "국익을 생각해 역할이 있으면 (사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