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이소은 기자, 김민우 기자 2021.04.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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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종부세 9억 고집, 왜곡된 시장(上)

종부세 9억 수정...'집값 원상복귀' 포기 선언한 文정부
"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당정이 '종합부동산세 9억원' 기준 상향을 공식화했다. 11년만의 손질이다. 정부가 고집스럽게 지키던 '종부세 9억원'을 손대는 것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초 약속한 '집값 원상복귀' 포기 선언이란 해석이 나온다. 남은 임기 내에 집값을 정부 출범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당정은 종부세 기준 변경과 함께 주택담보대출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예외적으로 10% 올려주는 대상을 현행 6억원 이하 주택에서 9억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종부세 기준이 수정되면 시가 9억원 기준을 적용해 온 분양보증, 주택연금, 중개보수, 특별공급 등 각종 정책도 연쇄적인 개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文 정부 들어 서울 중위아파트값 5.2억→8.7억, 종부세 부과 39.7만명→74.4만명..'등떠밀려' 인정한 집값상승?

20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당정은 올해 종부세 부과 기준일인 6월1일 이전에 종부세 기준 변경을 추진한다. 종부세 부과 기준인 공시가격 9억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이후 유지되고 있다. 부과 대상자는 현 정부 첫해였던 2017년 39만7000명에서 지난해 74만4000명으로 2배 가량 급증했다.



상위 1%에 부과하려던 종부세 당초 취지와 달리 현재 3~4%로 확대된 이유는 '집값 급등' 탓이다. 문재인 정부 4년 만에 전국 아파트값은 9.92%, 서울 아파트값은 14.46% 올랐다. 매매거래되는 아파트의 중간값을 의미하는 중위가격은 서울 기준으로 5억2996만원에서 8억7687만원으로 3억원 올랐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뿐 아니라 강북 웬만한 아파트도 종부세 부과 영향권 안에 들어온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간담회에서 "집값 원상복귀"와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값은 도리어 가장 가파르게 올랐다. 여기에 공시가격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이 늘어 조세저항이 선거 민심으로 표면화했다. 정부가 "원상복귀"를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 내에 집값이 많이 올라 종부세 부과 기준을 조정할 시점이 됐다는 인식이 있어 왔다"고 인정하면서 "다만 과거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렸을 때의 혼란, 상승한 집값을 인정해야 하는 부분, 집값 자극 우려 등으로 BH(청와대)에서 부담을 가져왔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종부세 상향 검토 과정에서 문제의 본질은 '조세저항'이 아니라 '집값 급등에 대한 책임'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결국은 정부가 올라간 집값을 원상복귀 못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며 "(9억원 기준 수정은) 조세저항 탓으로 돌릴게 아니라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는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집값상승은 재산세만 내는 중저가 주택에도 해당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9억원 부자감세'를 떠나 전체적으로 공정시장가액 비율, 공시가격 현실화, 재산세 세율 등을 들여다 보며 세금 인상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재산세 감면 대상을 공시가 6억원 이하에서 9억원 이하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려놓은 집값을 원점으로 돌릴 수 없다면 '시세 9억원' 기준을 적용하는 정책의 전환도 필요하단 얘기도 나온다. 첫째가 9억원, 15억원으로 대출한도를 정한 대출규제인데 여권을 중심으로 한도 10% 더 인정해 주는 대상자 확대가 논의 되고 있다. 그 밖에도 주택연금, 중개보수, 분양보증, 특별공급 등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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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화순 기자

종부세 9억, 서민 역차별…집값↑ 대출한도↓ 현금부자만 웃는다
"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9억원 기준을 상향하기로 사실상 방향을 정하면서 '9억원'에 걸려 있는 각종 규제 조치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9억원'에 집착하는 사이 종부세 등 세제 뿐 아니라 대출, 중개보수, 주택연금, 아파트 분양보증까지 곳곳에서 정책의도와는 다른 시장 왜곡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15억은 대출금지, 9억 넘으면 LTV 20%로 반토막...서울 아파트 절반이 9억 넘는데 '현금부자' 신났다

집값이 급등하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다. 정부는 2019년 12·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에서는 시가 15억원 이상 주택에는 주담대를 아예 금지했다. 시가 9억원 이하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40%를 적용하고 그 이상은 20%로 대폭 조였다. 이듬해 2·20 대책에 따라 조정대상지역의 LTV도 종전 60%에서 50%로 줄였다. 설상가상 정부가 규제지역을 2019년 말 기준 39곳에서 2020년 12월 111곳으로 대폭 확대하면서 사실상 전국 주요 지역의 주담대 한도가 모두 줄게 됐다.

대출한도는 줄었는데 집값은 급등했다는 게 문제다. 2017년까지만해도 서울에서 시가 9억원이 넘는 아파트 비중은 21.9%(부동산114)였다. 2018년에도 31%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서울에서 9억원을 넘는 아파트 비중은 49.6%까지 늘었다. 사실상 9억원은 서울 아파트 값의 평균값이 됐다는 얘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평균은 9억700만원이다. 강북 종로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10억4600만원, 용산은 14억3000만원, 마포는 10억3600만원이다. 서초구는 평균 18억원, 강남구는 평균가가 17억원을 넘어섰다. 서울시내 25개 구 가운데 10개 구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9억원을 넘는다. 강남3구는 아예 주담대 금지 상한선을 넘었다.

결국 현금이 넉넉한 현금부자가 아닌 이상 서울에서 대출을 받아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고 있는 셈이다. 여당이 LTV 한도를 10% 상향해 주는 우대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대출액이 '찔끔' 느는데 그쳐, 대출한도 기준인 9억원·15억원을 건드리지 않는 한 무주택자에게 체감도 높은 규제완화가 되기 어려울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분양가 9억 넘으면 분양보증 막혀 중도금대출 안나와..."둔촌주공 25평도 9억 넘을라" 서민 한숨, 주택공급도 왜곡

9억원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다. 2016년 7월부터 적용됐다. 국토부는 "실수요자 중심의 중도금 대출 시장 정착"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당시 서울 아파트 전용 84㎡ 평균 분양가가 6억6000만원, 1~5월 중도금 대출 보증을 받은 주택 중 9억원 초과 주택이 1.7%에 그친다는 게 근거였다. 분양가 9억원 이하 주택만 대출보증을 해줘도 실수요자들이 공적보증을 받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6년엔 그랬을 수 있지만 5년 새 상황은 크게 변했다. HUG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용 84㎡ 분양가는 7억2013만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과 비교하면 10% 가까이 오른 셈이다.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은 더이상 강남 재건축 만의 얘기가 아니다.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은 소형 분양가조차 9억원을 넘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강동구 표준지 공시지가가 올해 12.82% 상승하면서 업계는 3.3㎡ 당 최소 3700만원 수준의 분양가를 예상한다. 전용 59㎡ 기준 단순계산하면 8억8800만원, 발코니 확장비를 비롯 층과 향에 따라 9억원을 초과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재개발 사업은 참여 독려를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은 동작구 흑석2구역의 예상분양가는 전용 59㎡ 9억원, 전용 84㎡ 13억원 선이다. 중도금 대출이 안나오면 자금 여력이 없는 실수요자들은 청약 기회조차 잃게 되고 청약 시장은 현금부자들의 잔치가 된다.

'둔촌주공' 고분양가 논란이 일자 정부는 당초 상한제 취지가 훼손됐다며 실수요자를 위한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하지만 실수요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면서도 공급을 저해하지 않는 균형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땅값, 기본형 건축비, 가산비 등으로 산정되는 가격을 무리하게 제한하면 조합과 건설사는 공급을 미룰 가능성이 높다. 이미 강남 주요 재건축들은 이런 이유로 후분양을 확정지은 상태다.

◇서울 아파트 절반이 9억 넘는데.. 복비는 최고요율 9억원 적용, "고가주택 기준 9억 바뀌어야"

"서울 아파트 절반 9억" 서민 한숨…'종부세 9억' 정부 고집 꺾였다
시세 9억원은 중개보수(중개수수료·복비)를 낼 때 최고요율을 적용하는 기준 금액이기도 하다. 중개보수는 매매와 전세 모두 주택가격에다 0.4~0.9%의 중개보수 요율을 곱해 정한다. 최고요율인 0.9%(이내에서 협의 가능)를 적용하는 '고가주택' 기준은 시세 9억원이다. 예컨대 10억원자리 아파트를 매수했다면 중개보수로 900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다.

중개보수 최고요율을 적용하는 고가주택 기준은 2014년 중개보수 요율체계 개편을 하면서 정했다. 직전까지는 15년간 6억원을 적용해 왔다가 당시 "주택 시세가 올라 요율을 조정한다"는 취지에 따라 3억원 더 올려 잡았다. 문제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가주택 기준이 여전히 9억원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2014년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4억6283만원이었다. 현재(3월 기준)는 8억7687만원으로 7년간 2배 가까이 올랐다. 이에 따라 서울 아파트를 매수하는 사람의 절반 가량은 최고요율을 적용한 중개보수를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집값 부담도 만만치 않은데 부대비용인 중개보수가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을 넘다보니, 불만이 폭발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고가주택 기준을 12억원으로 올리는 권고안을 국토교통부에 권고했고, 국토부는 6월~7월경에 중개보수 요율체계 변경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권익위 안이 받아 들여진다면 10억 아파트의 중개보수는 90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낮아질 수 있다.

◇고령층 주택연금 기준 '공시가 9억원', 신혼부부 특공도 '분양가 9억'.. "집값올라 연금도 특공도 막혔다"

9억원 기준은 주택연금에도 적용된다. 살고 있는 집을 맡기고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받는 '역모기지'인 주택연금은 2020년까지만 해도 '시가' 9억원 이하 주택만 가능했다. 정부는 작년 9억원 기준을 '시가'에서 '공시가'로 변경했다. 시가로 12억원 정도의 주택까지도 연금가입 대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서울 기준으론 여전히 16%의 주택은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신혼부부나 생애최초 무주택자가 받을 수 있는 아파트 특별공급 분양권도 대상 주택 기준이 분양가 9억원이다. 정부는 청년층의 '패닉바잉'을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특별공급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지만 정작 분양가 9억원 이하 아파트 분양은 갈수록 줄고 있다. 아무리 특공 비중을 늘려도 나올 수 있는 물량은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특별공급 기준인 분양가격 9억원을 올리지 않는 한 청년들의 '갈증'이 해소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화순·이소은·김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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