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로 치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고용량 고성능 배터리는 만들지만 리모컨이나 시계에 넣는 일반 건전지를 만들 장비가 없는 상황인 셈이다." 반도체 제조기술에서 세계 최정상으로 평가받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부족한 반도체는 이런 고사양 반도체와는 종류가 다르다. 기술로는 30~50㎚대의 다소 뒤떨어진 공정으로 제조되는 제품이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머니투데이DB
삼성전자나 LG전자 (90,600원 ▼1,600 -1.74%)조차 DDI, PMIC 등을 원활하게 조달하지 못해 TV와 가전제품을 계획 물량보다 10~20% 이상 적게 생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TV 사업을 총괄하는 한종희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은 이달 초 급하게 DDI 공급업체인 대만 미디어텍을 직접 방문했다. '버린 기술'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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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반도체 부족 사태를 두고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 초반의 와이어링 하니스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도 이 지점에서다. 당시에도 차량용 전선 와이어링 하니스를 만드는 중국 현지 생산라인이 멈춰서면서 국내 자동차 공장이 '올스톱' 됐다.
와이어링 하니스는 자동차 조립 초기 공정에 설치하는 부품으로 차종과 세부모델(트림)에 따라 배선 구조가 제각각이어서 호환이 불가능하고 종류 많아 관리도 어려워 거의 전량을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조달에 의존했다. 기술로만 따지면 범용 기술로 손쉽게 만들 수 있지만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생산업체가 없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첨단기술과 범용기술업체를 두루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에서는 DB하이텍 (40,050원 ▼800 -1.96%) 등 파운드리업체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업계 한 인사는 "중견 반도체업체의 경우 자금력에서 정책적 지원 없이는 투자를 확대하기 쉽지 않다"며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선 정부가 이런 부분을 좀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