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던 글로벌 '車반도체' 공장 속속 가동 재개…품귀 해소되나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2021.04.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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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에 있는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나카 공장./사진=르네사스 홈페이지 캡처일본 이바라키현 히타치나카시에 있는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나카 공장./사진=르네사스 홈페이지 캡처


예기치 않은 천재지변으로 멈춰섰던 차량용 반도체 공장에 하나 둘씩 불이 켜지고 있다. 수요 예측 실패로 빚어진 수급난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1~3위 기업인 인피니온, NXP, 르네사스의 일부 공장이 잇따라 멈춰서면서 심화됐다. 예상보다 빠르게 가동을 재개했으나 출하량을 원래 수준으로 되돌리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하반기부터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불켜지는 차량용 반도체 공장…정상 궤도까진 '3개월' 넘게 소요
19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르네사스는 화재가 일어났던 이바라키현 나카 공장의 생산라인을 지난 17일 재가동했다. 르네사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 생산 능력은 화재 이전과 비교해 10% 미만"이라며 "이번주 중에 30%, 4월중에 50%, 5월 중에 화재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카 공장의 반도체 생산라인은 지난달 9일 화재가 발생해 가동이 중단됐다. 화재는 5시간 반만에 진화됐으나 300㎜ 반도체 웨이퍼(칩에 회로를 새겨 넣기 위한 기판)를 생산하는 시설이 훼손됐다. 현재 수급 차질이 가장 큰 품목인 MCU(마이크로 컨트롤 유닛)을 만드는 곳이다. MCU는 자동차의 각 기능을 제어하는 반도체로 파워트레인·섀시·차체 제어 모듈 등 차내 곳곳에서 사용되는데, 많으면 자동차 한 대에 200개까지 들어간다.

차량용 반도체는 하이테크 분야 축에 속하진 않지만 소품종 대량생산이라는 특성 때문에 설계 공정에 꽤 많은 시간이 투자된다. 칩 성능이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기 때문에 고온과 충격을 견뎌야하는 등 안전성이나 신뢰성 부분에서 따질 것도 많다. 르네사스가 가동을 재개했으나 오는 5월을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의 기한으로 잡은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피해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정상화까지 3개월에서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면서 "시험가동을 거쳐 만들어낸 베타 버전의 칩이 제대로 동작 되는지 따져봐야 하고 불량률은 얼마나 되는지 등 신뢰성 테스트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멈췄던 글로벌 '車반도체' 공장 속속 가동 재개…품귀 해소되나
지난 2월 미국 텍사스주 이상한파와 전력부족 사태를 맞은 NXP와 인피니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장 재개가 이뤄진지 한 달여 흘렀지만 아직 정상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NXP는 텍사스주의 사전 셧다운 조치 통보에도 웨이퍼 제조 시설 두 곳이 손상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특히 먼지 한 톨도 용납하지 않는 클린룸 시설이 훼손되면서 점검과 복구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피니온도 셧다운 일주일 만에 생산을 재개했지만 정상화 기한을 4개월로 잡았다. 요헨 하네벡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달 19일 "손실된 생산량을 복구할 수 없다"면서 "초점을 최고 품질과 신뢰성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맞추고 있으며 오는 6월에 가동이 중단되기 전 생산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요 예측 실패에 연달아 악재 겹쳐…"하반기 상황 개선" 기대
코나와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란으로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휴업에 돌입했다. 사진은 7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모습./사진=뉴스1코나와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 대란으로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휴업에 돌입했다. 사진은 7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모습./사진=뉴스1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지난해 코로나19(COVID-19) 사태에서 비롯됐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자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절반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반도체 생산업체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줄이는 대신 스마트폰·데이터센터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자동차 판매가 회복세를 타면서 완성차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에 직면했다. 폭스바겐과 GM(한국GM), 포드, 토요타, 혼다 등이 줄줄이 감산에 들어갔다. 여기에 정전과 화재 등 천재지변이 겹치면서 반도체 부족 사태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알릭스파트너스는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전세계 자동차 업계 매출이 약 606억달러(68조원) 감소할 것이라 예상했다.

국내 업체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53개 자동차 부품업체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업체의 48.1%가 차량용 반도체 수급차질로 생산을 감축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제적 재고 확보를 통해 생산물량을 조절해온 현대차도 지난달 공급 부족 상황이 장기화되자 브랜드 대표세단인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의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하반기부터는 점차 개선되기 시작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공급 차질이 빚어졌던 차량용 반도체 생산 업체들이 재가동을 시작했고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도 최근 55㎚(나노미터) 생산라인을 재조정하는 방식으로 차량용 반도체 증산에 나섰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반도체 수급난이 자동차를 넘어 스마트폰, 서버 등 다른 시장으로 확산할 조짐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로 기존 파운드리 생산라인에 주문이 몰리면서 반도체 시장 전반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주문이 몰리면서 파운드리 업체들은 위탁생산 비용을 올리고 계약 기간 단위도 기존보다 짧게 잡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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