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의 '택배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이 금지되면서 기사들이 개별배송을 중단했다 재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는 입주민과 기사 모두 한 발짝씩 양보하는 방법으로 비슷한 문제를 풀어냈다. 어르신들을 단지 내 택배원으로 고용한 인천의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노인 일자리 창출은 덤이다.
16일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SK스카이뷰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 택배 물품이 쌓여 있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자칫 '택배 대란'이 불거질 뻔한 상황이었으나, 택배사와 입주민, 택배기사가 협의를 통해 해결했다. 이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에 택배 거점을 마련한 다음 60~70대의 어르신 28명을 고용해 자체적으로 '실버 택배기사'를 운영한다. 소형 탑차는 지하주차장 거점에 직접 물품을 내리고, 대형 탑차의 경우 입구까지만 배송한 뒤 '실버 택배기사'들이 차량을 몰고 거점으로 물품을 가져온다.
택배기사들의 만족도도 높다. 택배기사 김모씨(42)는 "입주민들의 배려로 배송 시간이 다른 아파트의 절반밖에 안 걸린다"며 "어르신들이 차량에서 물품 내리는 것도 도와주시고 배송도 직접 해 주시니 너무 편하다"고 했다. 김씨는 "어르신들이 배송하시다 보니 고객분들도 실수가 있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가 주시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 아파트 내에는 고덕동 A아파트와 비슷하게 유치원·경로당이 있다. 인근에 초·중·고등학교가 5곳이나 있어 오가는 학생들도 많아 지하주차장을 통해 물품을 배송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입주민들은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입주민 편의를 위해 택배기사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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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대표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모씨(70)은 "하루에 아파트 안에서만 수천개의 택배 물품이 쏟아지는데 기사들 노고가 얼마나 크겠나"며 "입주민들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실버택배'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라고 했다.
실버 택배기사들의 급여는 택배기사와 택배사가 본인의 수수료를 조금씩 포기했다. 택배배송비는 택배기사와 택배사가 일정비율로 나눠 갖는데, 서로가 자기 몫을 조금씩 포기해 상생모델을 만들었다. 택배사 관계자는 "취지가 바람직해 소속 기사 배려 차원에서 협의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전동카트 사용·출입시간 제한…'택배전쟁' 해결 위해 머리 맞댄 기사와 입주민
16일 인천 미추홀구 SK스카이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한 택배기사가 물품을 내리고 있다. 이 물품은 각 단지로 '실버택배원'들이 배송한다. / 사진 = 오진영 기자
세종시 호려울마을 10단지 '중흥 S-CLASS'아파트의 경우 입주민 656세대가 공동으로 아파트 내부에서만 운영하는 전동카트를 구매했다. 대당 1000만원에 달하는 구매비용, 연간 200만원이 넘는 유지비용도 입주민들이 낸다. 아파트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은 손수레 대신 전동카트를 이용해 배송한다"며 "함께 살자는 입주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울산 남구 옥동의 한 아파트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아이들이 오가지 않는 시간에만 탑차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 아파트는 지난 2월 하루 4시간 동안 탑차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는 방법에 대해 주민투표를 거쳐 78.7%의 동의를 얻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입주민들이 기사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가장 좋은 방법은 탑차가 지상으로 출입하는 것이지만 입주민과 기사의 협의를 통해 다른 방법을 찾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