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원숭이 '키메라배아'…"판도라 상자 열렸다"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2021.04.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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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원숭이 혼합배아 키메라 등장...질병발생 원인파악 목적이나 생명윤리 논란 거세져

후안 벨몬테 미국 솔크연구소 교수, 지웨이즈 중국 쿤밍과학기술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15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셀'에 형광물질을 도포한 인간의 줄기세포를 원숭이 배아에 주입해 키운 혼합배아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 사진=쿤밍과학기술대후안 벨몬테 미국 솔크연구소 교수, 지웨이즈 중국 쿤밍과학기술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15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셀'에 형광물질을 도포한 인간의 줄기세포를 원숭이 배아에 주입해 키운 혼합배아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 사진=쿤밍과학기술대


인간의 줄기세포를 원숭이 배아에 주입해 키운 '인간-원숭이 혼합배아'가 등장해 과학계의 생명윤리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후안 벨몬테 미국 솔크연구소 교수, 지 웨이지 중국 쿤밍과학기술대학 교수가 이끌고 있는 공동연구팀은 15일(현지시각) 인간의 줄기세포를 원숭이 배아에 주입해 '키메라'를 만든 뒤 성장 과정을 관찰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키메라는 둘 이상의 종의 세포가 결합된 유기체를 말하며, 연구팀은 체외세포배양 방식으로 키메라를 만들었다.

과학계에서는 혼합배아를 통해 인간의 장기를 성장시킨 후 이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쥐와 양, 돼지 등에 이어 이번엔 인간과 같은 영장류 동물인 원숭이로 실험 대상이 확장됐다.



후안 벨몬테 교수 공동연구팀의 논문에 제시된 연구 요약도. /자료=쿤밍과학기술대후안 벨몬테 교수 공동연구팀의 논문에 제시된 연구 요약도. /자료=쿤밍과학기술대
연구팀은 인간 줄기세포 25개를 132개의 원숭이 배아에 각각 주입했다. 관찰 결과 실험 11일 후에는 91개의 키메라가 성장 상태를 지속했다. 17일 후에는 12개, 19일 후에는 3개의 키메라만 남았다. 2017년 돼지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했던 연구팀은 돼지보다는 원숭이 혼합배아에서 인간세포의 특성이 더 잘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벨몬테 박사는 "인간-돼지 혼합배아는 중국어와 프랑스로 의사소통을 하는 차원이었다면, 인간- 원숭이 혼합 배아는 보다 밀접한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차이는 인간과 원숭이, 인간과 돼지가 갖고 있는 진화적 거리에서 비롯됐다.


연구팀은 인간-원숭이 혼합배아를 활용해 인간장기를 개발할 계획은 없으며, 서로 다른 종의 세포가 초기 성장 단계에서 어떤 경로로 상호작용하는지 관찰하는데 이번 연구의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혼합배아 연구에 적용되는 엄격한 윤리지침도 모두 준수했다고 밝혔다.

벨몬테 박사는 "이번 연구는 수정란이 분열되는 시점부터, 알츠하이머와 심장병, 암을 포함한 여러 질병들의 발생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하는 생명의학기술vs장기 공급 위한 동물 이용…"판도라 상자 열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장류 동물의 배아를 활용한 이번 연구에 대해 과학계에서는 생명의학기술의 진보라는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생명윤리 측면에서의 문제제기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윤리연구센터 소장이자 생명윤리학자인 줄리앙 사불레스쿠 교수는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실험은 20일 만에 끝났지만 키메라가 인간의 장기공급원으로 개발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라며 "생명윤리적 측면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는 문제, 동물권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우려 중 하나는 인간 신경세포가 필요한 장기가 아닌 다른 동물의 뇌나 다른 조직에 영향을 미쳐 인간과 비슷한 의식, 신체 구조를 가진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과 동물의 혼합배아 연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이다. 이는 결국 키메라에 대한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이어진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 생명윤리학자인 현인수 박사는 "연구팀은 연구윤리 지침을 철저히 따랐지만, 어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모호한 실체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윤리적 문제 등을 이유로 인간 줄기세포를 활용한 키메라 연구에 연방정부 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벨몬테 박사 연구도 중국 정부와 스페인 대학, 미국 재단 등의 자금을 지원받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네이처에 따르면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는 다음달 중 최근 생명의학기술 진척 상황을 등을 감안한 줄기세포 연구 가이드라인 을수정 발표할 전망이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에는 인간과 영장류의 키메라 연구에 대한 내용도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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