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팝페라..K-POP의 떠오르는 '큰 손'

머니투데이 박영웅(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4.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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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뉴에라프로젝트 사진제공=뉴에라프로젝트


지난 3월 임영웅은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로 MBC '쇼! 음악중심' 1위 트로피를 차지했다. 당시 경쟁상대였던 블랙핑크 로제와 아이유를 제친 결과였기에, 임영웅이란 이름은 해외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는 성인가요를 대표하는 트로트가 10~20대 팬덤에 견줄 정도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성과라 할 만하다.

트로트가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2007년 KBS '뮤직뱅크'에서 강진이 '땡벌'로 1위에 오른 이래 14년 만. 1993년 김수희의 '애모', 2005년 장윤정의 '어머나' 등이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정상에 오른 적은 있지만, 가요계가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재편된 뒤 트로트는 사실상 음악방송에서 배제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순위 산정기준에서 음반 점수, SNS, 유튜브 조회수의 비중이 커지면서 트로트가 메인차트에서 멀어지는 건 당연했다. 여기에 실시간 문자 투표까지 더해지니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아이돌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임영웅의 '중년 팬덤'은 기존 판도를 뒤집기에 충분했다. 50~60대 중장년층이 음원을 적극 소비하면서 음원사이트 순위권 진입을 위한 스트리밍, 아이돌 관련 인기차트의 투표 총공세 등 스케일을 압도하는 지원이 이어졌다. 가온차트의 디지털, 다운로드, BGM, 벨소리, 컬러링 등 5개 차트를 휩쓰는 놀라운 화력이다. 이처럼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 활동적 중년), 혹은 '오팔(OPAL)세대'(Old People with Active Lives :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중년층)라 불리는 세대는 젊은 층을 위협하며 대중문화계 '큰 손'으로 떠올랐다.

신중년 세대가 주목한 또 다른 장르는 '크로스오버', 팝페라다. JTBC '팬텀싱어'를 시작으로 불이 붙은 크로스오버 열풍은 중년층에게 사랑받으며 꾸준히 소비되고 있는 장르다. 각기 다른 색깔의 음악 장르가 결합해 또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을 의미하는 크로스오버.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이 장르파괴의 붐은 최근 음반, 공연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가요계의 두터운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사진제공=인넥스트렌드 사진제공=인넥스트렌드
테너, 카운터 테너, 바리톤까지 성악 전공자로 구성된 '팬텀싱어3'의 우승팀 라포엠(LA POEM)의 경우, 공연과 굿즈 등을 단숨에 매진시킬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한다. '성악 어벤져스'라 불리는 이 팀의 강점은 퓨전음악의 범주에 있으면서도 대중음악의 문법과 마케팅을 따르는 데에 있다. 가호, 이스란 등 대중가수와 히트 작가들과의 신선한 협업, 그리고 연말 시즌그리팅 굿즈 발매, 라디오와 SNS 마케팅 등을 통해 팬들과 가깝게 활동 중이다. 이는 다소 낯설고 어려웠던 클래식 음악의 장벽을 허문 대중친화적 소통이라는 평이다.

대중문화 지형을 바꾼 신중년 층은 현 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큰 손'이다. 많은 트렌드 서적에서도 예측해듯 이들은 90년대 대중문화 팬덤 부흥의 시기를 겪어 팬덤 문화에도 익숙하고,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 소비에도 적극적이다. 게다가 점차 노령화된 인구의 향후 주요 축인 만큼 앞으로 문화 산업 변화를 더 주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 KBS '겨울연가'에 열광한 일본 중년 여성들이 당당히 취향을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이들이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데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장기화된 '멈춤' 속에서 트로트, 혹은 크로스오버 가수들의 노래가 일종의 심리적 해방구 같은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미스터트롯' '팬텀싱어' 등 TV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중년 세대들의 '덕질'은 이제 본격 궤도에 올랐다. 능동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동시에 음악산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세대인 만큼, 향후 대중가요씬에도 이들의 영향력은 작지만 큰 바람을 일으킬 전망이다. 대중문화 시장이 앞으로 이들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박영웅(대중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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