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금융지주들이 빠르면 이달 중 금융위원회에 인터넷은행 설립 의견을 전달한다. 은행을 카카오뱅크 모델로 변신시키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체질을 디지털로 바꾸기보다 새로운 은행을 세우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간편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금융그룹은 인터넷은행 출범 당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2015년 케이뱅크가 1호 인터넷은행으로 허가를 받을 당시 ICT 기반 ‘혁신’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메기의 등장을 기대해 대형 은행, 금융지주를 배제했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자본력이나 경험에서 고객들이 인터넷은행을 찾을 가능성을 낮게 봤다”며 “당국 허들이 아니었더라도 허가 신청을 했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하나은행이 각각 케이뱅크 지분 19.9%, 카카오뱅크 9.35%, 토스뱅크 10%를 보유하는 정도에 그쳤다.
금융지주가 인터넷은행에 뛰어 들면 기존 인터넷은행들이 감내하기 힘든 수준의 초저금리 신용대출을 내놓는 방법으로 고객들을 끌어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대형 항공사들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를 견제하기 위해 LCC 자회사를 설립했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LCC들은 대형 항공사 운임의 70%를 매기는 저가 전략으로 국내와 아시아 위주 단거리 노선을 운영했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진에어, 에어부산을 세워 경쟁이 격화됐다.
금융그룹 소속 대형 은행의 전체 순이익에서 신용대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0~15% 정도다. 대형 항공사들이 그랬듯 저가(저금리) 경쟁으로 인터넷은행의 질주를 저지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가 신용대출에서 체력을 쌓고 IPO(기업공개)를 통해 자본 여력을 대폭 끌어올린 뒤 부동산 담보대출, 기업대출로 영역을 넓히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일정 부분 신용대출 이자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카카오뱅크의 시장잠식을 막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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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들은 이 점을 두려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이제 막 성장기에 들어선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의 편익이 커지기 때문에 금융지주의 도전에 시비를 걸기는 쉽지 않다. 혁신 측면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점수도 높지 않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하랬더니 직장인 대출 위주의 영업을 하면서 당국을 배신한 것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구체적인 입장을 피력하지 않지만 부정적이진 않다. 은성수 위원장은 지난 9일 열린 카드·캐피탈·저축은행 CEO(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 요청을 받은 건 없다”며 “요청이 오면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금융권은 금융위가 ‘소비자 보호와 이익을’ 강조해 온 정부 기조를 근거로 금융지주들의 시장 진출을 저지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금융그룹들이 역차별을 호소하는 데다 인터넷은행에 독과점적인 지위를 부여할 명분도 딱히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