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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모델링' 실패한 금융지주, '금융판 LCC'로 역공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21.04.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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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모델링' 실패한 금융지주, '금융판 LCC'로 역공




금융지주회사가 일제히 인터넷은행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기존 은행의 디지털 전환을 시도해 봤지만 체질이 쉽사리 바뀌지 않고 한계를 절감해 우회로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선발주자로서의 독주체제를 굳혔던 인터넷은행들은 경쟁자가 많아지는 것이 달갑지 않다. 기업가치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잡는 차원에서 인터넷은행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금융지주들이 빠르면 이달 중 금융위원회에 인터넷은행 설립 의견을 전달한다. 은행을 카카오뱅크 모델로 변신시키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체질을 디지털로 바꾸기보다 새로운 은행을 세우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간편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통의 은행들은 인터넷전문은행과 비교해 사업 영역이 많고 그만큼 몸집이 무겁다”며 “아예 가벼운 조직을 새로 만들어 경쟁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그룹은 인터넷은행 출범 당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금융당국도 2015년 케이뱅크가 1호 인터넷은행으로 허가를 받을 당시 ICT 기반 ‘혁신’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메기의 등장을 기대해 대형 은행, 금융지주를 배제했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자본력이나 경험에서 고객들이 인터넷은행을 찾을 가능성을 낮게 봤다”며 “당국 허들이 아니었더라도 허가 신청을 했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하나은행이 각각 케이뱅크 지분 19.9%, 카카오뱅크 9.35%, 토스뱅크 10%를 보유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인터넷은행은 예상을 뒤집고 급성장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해 말 고객수는 1360만명, 수신잔액은 23조5400억원에서에 달한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1147만명, 수신잔고는 25조39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1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할 때 카카오뱅크는 기업가치를 9조3200억원으로 평가 받았다. 7조원대인 우리금융지주보다 훨씬 높다. 장외에서 시가총액은 35조원에 이른다. 은행주 중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KB금융(약 22조원)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금융지주의 위기감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금융지주가 인터넷은행에 뛰어 들면 기존 인터넷은행들이 감내하기 힘든 수준의 초저금리 신용대출을 내놓는 방법으로 고객들을 끌어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대형 항공사들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를 견제하기 위해 LCC 자회사를 설립했던 것을 떠올리면 된다. LCC들은 대형 항공사 운임의 70%를 매기는 저가 전략으로 국내와 아시아 위주 단거리 노선을 운영했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진에어, 에어부산을 세워 경쟁이 격화됐다.

금융그룹 소속 대형 은행의 전체 순이익에서 신용대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0~15% 정도다. 대형 항공사들이 그랬듯 저가(저금리) 경쟁으로 인터넷은행의 질주를 저지할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가 신용대출에서 체력을 쌓고 IPO(기업공개)를 통해 자본 여력을 대폭 끌어올린 뒤 부동산 담보대출, 기업대출로 영역을 넓히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일정 부분 신용대출 이자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카카오뱅크의 시장잠식을 막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들은 이 점을 두려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는 “이제 막 성장기에 들어선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의 편익이 커지기 때문에 금융지주의 도전에 시비를 걸기는 쉽지 않다. 혁신 측면에서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점수도 높지 않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하랬더니 직장인 대출 위주의 영업을 하면서 당국을 배신한 것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구체적인 입장을 피력하지 않지만 부정적이진 않다. 은성수 위원장은 지난 9일 열린 카드·캐피탈·저축은행 CEO(최고경영자)들과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아직 요청을 받은 건 없다”며 “요청이 오면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금융권은 금융위가 ‘소비자 보호와 이익을’ 강조해 온 정부 기조를 근거로 금융지주들의 시장 진출을 저지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금융그룹들이 역차별을 호소하는 데다 인터넷은행에 독과점적인 지위를 부여할 명분도 딱히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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