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LG·SK 합의에 너무 많이 등장한 미국이 불편한 이유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1.04.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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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사진=AFP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이상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의 공동 입장문 中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만 2년을 끌어온 소송전을 합의로 마무리했다.



지난 11일 양사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터리 분쟁을 모두 종식키로 합의했다"며 "이번 합의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가치 기준 총액 2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하고 관련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졸면 죽는' 냉혹한 글로벌 경쟁 현실에서 양사가 소모적인 '집안 싸움'에 수 천억원을 들이던 와중,대승적으로 합의 결단을 내린 것은 몹시 반길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이날 양사가 낸 입장문을 곱씹어 보면 불편한 대목이 하나 있다. 자주 등장한 '미국'이다.



양사 CEO는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신 한국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 드린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와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전에서 막판 쟁점으로 떠올랐던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보유한 SK이노베이션은 이같은 공동 입장에 더해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친환경 정책, 조지아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도 밝혔다.

양사가 바이든 정부 정책에 적극 부응한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이는 앞으로 중국과 유럽에 이어 큰 폭의 전기차 시장 성장세를 보일 미국에서의 돈독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로 읽혔다. 하지만 동시에 자칫 이번 합의 중재 과정을 통해 미국 정부의 양사에 끼치는 입김이 더 세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갖게 한 대목이다.


당장 워싱턴포스트(WP)는 양사 합의 소식에 대해 '승자는 바이든'이란 평가를 보란듯 내놨다. 일자리 창출, 미국 현지 기반의 전기차 생태계 구축 등에 열을 올리던 바이든 대통령은 실리 측면에서 자신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적재산권을 해치지 않았다는 명분도 가져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중재 과정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의 '노고'도 조명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캐서린 타이 USTR 대표가 이번 (합의)결정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전했다.

앞서 블룸버그는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포드, 폭스바겐 등의 로비스트들이 미국 내 최소 12개 기관과 접촉하며 당사자들의 입장을 대변중이라 밝혔다. 얼마나 많은 미국 관계기관이 복잡하게 꼬인 이 사안을 풀기 위해 관여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정부도 이번 합의를 위해 중재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하지만 양사 합의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결국 미국 정부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적어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취재해온 바에 따르면, 이번 배터리 전쟁과 관련해 정부의 태도로부터 받은 인상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연락을 시도했던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기본적으로 기업 간 일"이라며 선긋기였다.

2019년 9월 산업부 중재로 양사 CEO 합의석이 마련됐다는 것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정부 역할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올해 1월 정세균 국무총리의 '조속한 합의를 바란다'는 희망 발언 정도가 매우 '이례적' 개입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양사 합의 소식 직후 입장문을 통해 "배터리 전쟁 종결을 적극 환영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2차전지 산업계 전반의 연대와 협력이 더욱 공고해지길 기대한다"며 "이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참으로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단 일각 지적들이 있었다. 합의가 다 이뤄진 다음에야 정부 곳곳에서 "물밑에서 노력해왔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리 와닿지 않는다.

물론 정부가 기업에 팔 비틀기 식으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던 시기는 지났다. 그래서도 안된다. 하지만 경중을 판단해 좀 더 빨리, 불필요한 소송 비용이나 감정 싸움 등 출혈이 덜하도록 할 방법은 없었을까. 이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어차피 적극적인 제 3자 중재 없이는 끝나지 않을 소송이었다. 바이든 미국 백악관마저 입장자료를 통해 한국 배터리 회사간 이뤄진 이번 합의를 두고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의 승리"라고 치켜세우는 것을 보며 자못 아쉬운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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