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굴기-유럽·일본의 역습, K배터리 둘러싼 거센 '파고'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1.04.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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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K배터리 '루즈(Lose)·루즈'에서 '윈(Win)·윈'으로-②

편집자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의 '세기의 소송'이 2조원의 보상금에 합의하면서 마무리됐다. 불확실성 해소로 시장은 환호했지만 소송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다. 소송의 짐을 털고 다시 뛰는 한국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과 풀어야할 과제를 짚어본다.

中 굴기-유럽·일본의 역습, K배터리 둘러싼 거센 '파고'


#지난해 하반기, 배터리 업계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지산업협회 등이 '전지산업의 날(약칭 배터리의 날)' 제정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 회자됐었다. 마침 협회 창립 10주년을 맞은 해인데다 글로벌 무대에서 큰 폭으로 성장 중인 K-배터리를 지원하자는 뜻에서였다.

코로나19(COVID-19)가 확산중인 이유 등으로 이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당시 업계 한켠에서는 냉랭한 반응도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감정 대립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를 봉합치도 않고 배터리의 날 제정은 '어불성설'이란 지적이었다. 올 해는 양사가 대승적 합의에 나선 만큼 분위기가 달라질지 주목된다. LG와 SK간 소송이 합의를 통해 마무리되면서 중국, 유럽, 일본 등 해외 기업들에 맞서 K배터리가 다시 선의의 경쟁을 펼칠 토양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전기차 시장의 급팽창과 함께 전세계 배터리 산업의 경쟁 구도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나서 자국 배터리·전기차 산업을 집중 육성했던 양상이 올해는 각국별로 보다 뚜렷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생산량 기준 10년 간 4배로 커질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더 많은 '파이'를 가져가는 한편 저성장 돌파구도 여기서 찾겠다는 전략이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은 2020년 563GWh에서 2030년 2262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이 막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 개별 기업들에게만 경쟁을 맡겨두기보다 정부가 나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다. 필요에 따라 관련 기업끼리도 적극적으로 파트너십 체결에 나서는 등 원활한 공조체계를 구축중이다.



중국은 2020년 말 폐지 예정이었던 신에너지차(전기차 등) 취득세 감면정책, 즉 보조금 정책을 2년 더 연장했다. 중국이 그동안 자국 배터리 탑재 차량에 보조금을 준 이유로 이 정책의 수혜를 톡톡히 본 것이 중국 제 1의 배터리 기업 CATL이다.

2011년까지만 하더라도 신생 기업에 불과했던 CATL은 현재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 전기차 배터리 회사로 성장했다. 중국이 전세계 전기차 시장의 50%를 넘게 차지하는 덕도 봤다. 올해에도 감면 대상 승용차 55개 모델 중 CATL 배터리 탑재 모델이 13개로 최다여서 수혜를 이어갈 전망이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생산능력 확장에도 공격적이다. 올해 1분기 기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발표한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프로젝트만 총 22건으로 그 규모가 1600억위안(약 27조원)에 달한다. CATL의 생산능력은 지난해 109GWh에서 2023년 336GWh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말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생산능력은 연 120GWh였다.


더욱 무서운 것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우물 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CATL은 중국 외 지역 진출을 공식화했고 자사 및 합작사에만 배터리를 공급했던 BYD(비야디)도 올 초 처음으로 타사에 배터리를 판매한다고 전략을 바꿨다.

이런 가운데 유럽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조사업체 EV볼륨에 따르면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을 앞질렀다.

EU(유럽연합)는 현재 배터리 혁신 프로젝트에 민간과 합쳐 16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기로 결정했으며 2025년까지 배터리 자급자족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전세계 배터리 생산량 비중을 지난해 7%수준에서 31%까지 4배 이상 늘릴 것으로 예상됐다.

이 전략에 부응한 대표적 기업이 폭스바겐이다. 최근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 내 총 6개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유럽 배터리사인 노스볼트(스웨덴 기업)의 손을 꽉 잡았다. 10년의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해 돈독한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일본은 조용히 기업간 합종연횡을 시도중이다. 지난해 4월 일본 대표 자동차 기업 도요타가 대표 배터리 기업 파나소닉과 함께 합작법인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솔루션'을 설립했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이 주된 목적이다. 파나소닉으로서는 테슬라 의존도를 낮추고, 도요타로서는 전기차 시장 패권을 갖겠다는 의도가 서로 통했다. 특히 배터리 업계에서는 도요타가 올 해 중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시제품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해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일본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2조엔(약 20조원) 상당 재원을 투입키로 결정하면서 일본 배터리 산업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들이 나온다.

미국은 올해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하면서 뒤늦게 친환경 정책 및 전기차 산업 육성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미국은 향후 중국과 유럽에 이은 최대 전기차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의 부품 공급망을 강화하자는 게 바이든 정부의 전략이다. '조지아 공장'이 걸린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간 분쟁에서도 바이든 정부가 고민했던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전략 목표 달성이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3사는 이미 기술력 측면에서 안정적 글로벌 시장 지위를 가졌다는 강점이 있다"며 "소송 리스크가 걷힌 만큼, 정부가 배터리를 둘러싼 유관 산업 육성을 염두에 뒀을 때 운신의 폭이 예전부터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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