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덕혜옹주 초상화로 추정되는 황경식 교수의 소장품.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덕혜옹주의 고교 시절 사진.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작품의 뒷얘기를 소개하는 노학자의 눈빛에는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책에는 그가 오랜 세월 마음을 담아 수집한 작품들의 뒷얘기가 담겨있다. 화가 이중섭의 스승이자 오산학교 미술 담당 교사였던 천재화가 임용련의 예수 십자가상부터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까지, 그가 모아온 콜렉션의 종류와 이야기는 박물관 하나를 만들고도 남을만큼 풍부했다.
"제 아내는 국내 최초 여성 한의학 박사인 강명자 꽃마을한의원 원장입니다. 아내가 불임과 난임 치료에 열과 성을 다한 그 동안의 성공 사례가 1만여건이 넘습니다. 그런 아내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었어요. 아내의 호인 '여천(如泉)'을 이름으로 한 미술관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아내도 탐탁지않아 했어요.(웃음) 고미술품이란 게 갈고 닦기 전엔 쓰레기나 다름 없거든요."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송자관음보살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중국에 드나드는 큐레이터에게 '아기를 안고있는 관음보살(송자관음)이 있으면 모아달라'고 한 게 어느 덧 80점 정도가 돼갑니다. 제가 갖고 있는 송자관음상이 중국 전역에 남아있는 것 보다 많을 지도 몰라요. 일본 마리아관음상은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일본에 가톨릭교가 전파된 건 400여년 전입니다. 이 때 일본에서 신부들이 한꺼번에 순교하는 등 심각한 박해가 이어졌어요. 그래서 마리아도 관음보살로 위장하게 됐죠. 멀리서 보면 관음보살 상인데 가까이서 보면 마리아인 거죠. 마리아 관음은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수백 년 전 생겨나 지금도 하나의 종교로 잔류하고 있답니다."
임용련이 미국 유학 시절 예일대 졸업작품으로 남긴 십자가의 상. /사진제공=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십자가의 상이 이충렬씨라는 콜렉터를 통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해도 국립미술관에선 이 작품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어요. 인수 제의가 들어갔지만 사지 않았다고 해요. 곧바로 제게 인수 제의가 왔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화라는 가치가 있어서 가격 고하를 막론하고 산다고 했죠. 그런데 얼마 전부턴 국립미술관에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전시회를 열 때 마다 이 작품을 대여해갔어요. 입장이 바뀌었죠. 지난해엔 국가에 이 그림을 팔 생각이 없느냐고 의견을 물어오더군요. 제가 고집 부릴 이유가 없죠. 제값 이상을 받고 넘겼습니다."
그가 세계 각국의 미술품을 모으며 느낀 점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미술품은 빈곤하다는 사실이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간송미술관 등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콜렉션이 많지 않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그림 그리는 사람을 중인 이상으로 대우해주지 않다보니 특유의 예술 세계가 발현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만큼 즐길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국립중앙박물관의 박물관대학에 다니며 열심히 고미술을 공부했더니 지금처럼 즐길 수 있을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었죠. 즐기는만큼 모으고 싶더군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너무 즐거우니까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국내 미술계가 더욱 많은 작품으로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도 고미술을 공부해서 저처럼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