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1호 책상, 당 대회 단상에 오른 백자 찻잔

뉴스1 제공 2021.04.1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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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12편-산업도자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최희선 디자인 박사. (현)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신록이 눈부신 계절이 돌아왔다.



온 세상이 푸르른 4월 평양에서는 1만여 명의 넘는 당 하위 책임 비서들이 참여하는 제6차 세포비서대회가 8일 막을 내렸지만, 북한 언론에서는 아직도 행사의 보도 열기가 뜨겁다. 우리에게 이름이 생소한 세포비서대회는 지난 6일 김정은 총비서의 개막사를 시작으로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제시한 전략 방침을 당세포가 솔선수범 실행하도록 독려하고, 10대과업을 확정해 공포하기 위한 행사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국내외 언론은 이 대회를 통해 북한의 정책 변화와 주요 인물들의 동향을 살폈는데, 디자인 전공인 본인은 엉뚱하게 하얗고 반짝이는 순백 찻잔에 눈길이 갔다.

북한의 지도자와 당 중앙위원회 비서들이 참석하는 각종 회의와 대회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항상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 뼘 높이의 백색 찻잔이다. 가끔 은 찻잔에 금빛 장식이 보이기는 하지만, 북한 고위층의 주요 행사에서 사용하는 찻잔들은 대부분 덮개와 손잡이가 달린 순백의 찻잔들이다.



북한의 도자기 찻잔은 청와대 회의에서 자주 보이는 유리컵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선백자가 연상되는 순백의 찻잔과 투명 유리컵, 이는 단순한 생활 소품이 아닌 남북사회를 상징하는 작은 상징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1년 4월 6~8일 개최된 제6차 세포비서대회와 2020년 8월 19일 노동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전원회의 모습.© 뉴스12021년 4월 6~8일 개최된 제6차 세포비서대회와 2020년 8월 19일 노동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전원회의 모습.© 뉴스1
북한의 산업도자는 가내 작업이었던 초기 공예가 산업으로 확대 분리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후복구 시기에 북한은 공예를 활용한 문화용품, 장식물을 창작하며 실용 예술품을 만들게 하며 부족한 생필품을 보충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1956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에서 공예분과위원회가 분리되며, 1960년 전국공예전람회를 개최하여 금속, 수예, 도예, 목공품과 함께 경공업 도안 작품들도 전시한 것으로 『조선미술사 2』는 기록하고 있다. 1964년 미술가동맹에서 공예분과에서 산업미술분과가 독립되었지만, 2012년 이후 열리는 국가전시회에서도 생활도자기와 장식용 청자가 산업미술 도안들과 함께 전시되는 모습을 간간이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장을 방문한 김정은 당 총비서와 당시 전시회에 출품된 《경질그릇형태 및 화지장식도안》 모습. (조선중앙통신)© 뉴스12012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장을 방문한 김정은 당 총비서와 당시 전시회에 출품된 《경질그릇형태 및 화지장식도안》 모습. (조선중앙통신)© 뉴스1
청자가 전시된 2014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 전경. (조선중앙TV)© 뉴스1청자가 전시된 2014년 국가산업미술전시회 전경. (조선중앙TV)© 뉴스1
전통-현대,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북한의 도자기 실험

북한의 예술성, 기술성과 사상성이 짙은 도자기 작품들은 만수대창작사의 도자기창작단에서 주로 창작되며, 실용적인 생활 도기(북: 일용사기)는 지방 공장에서 탄생 된다. 대표적 도기공장으로는 역사가 긴 함경북도 경성군의 경성도자기공장과 평양시 선교도자기공장을 들 수 있다.

경성도자기공장은 접시, 사발, 컵, 주전자, 꽃병을 비롯한 수백 개의 도자기제품과 장식용 공예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장은 60년대 공예작업반, 미술실을 설치하여 예술도예품들도 만들어 오고 있다. 이 공장은 다양한 도자기의 형태 개발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백색도(whiteness)’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경성도자기공장의 홍보 영상. (DPRKToday(2021), 1월 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완수- 경성도자기공장에서) © 뉴스1경성도자기공장의 홍보 영상. (DPRKToday(2021), 1월 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완수- 경성도자기공장에서) © 뉴스1
북한 생활도기의 유행을 이끄는 평양 선교도자기공장의 제품들.( 조선신보)© 뉴스1북한 생활도기의 유행을 이끄는 평양 선교도자기공장의 제품들.( 조선신보)© 뉴스1
북측 주부라면 한 번쯤 순백의 평양 백색 식기에 멋진 밥상을 차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평양시에 위치한 선교도자기공장은 북한 일용도기 제품의 형태, 색채, 장식의 유행을 만들어내는 생산기지다. 조선신보 기사에서 "선교도자기는 현재 평양제1백화점과 평양지하상점, 각지의 꽃상점, 꽃매대에서 봉사(판매)되고 있는데 가운데 모양과 색이 매우 우아하다는게 사용자들의 일치한 평가"라고 소개하였다. 모든 북한 디자인의 중심이 평양이듯, 일용도기들도 평양 선교도자기공장이 현대적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첨단 시설과 현대적 스타일로 인정받는 선교도자기공장은 북한 백자의 거장인 리현순(李賢純, 1938. 9. 27 –사망연대 미상)이 활동한 공장이기도 하다. 리현순은 일본 교토시립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스웨덴왕립미술학교를 수학한 도예 분야 인재로, 1965년 입북 후 만수대창작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선교도자기공장과 대동강도예공장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는 백자의 유약과 생산방법을 연구하여 발명권도 받았을 정도로 백자 발전에 혼신을 다 바친 인물이다. 리현순은 1984년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으로 들어가며 공훈예술가로 활동하게 되었고, 북송된 또 다른 재일조선인 도예가 김보현은 경성도자기공장에서 일하며 지방의 도예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과거 「조선예술」(2000. 9, pp.53-56)은 "민족의 슬기와 재능의 산물인 유명한 백자기의 전통계승과 현대성의 구현- 이것은 조국과 민족의 귀중함을 새기던 어린 시절부터 그가 간직해온 꿈이었고 소원이었다"고 리현순을 소개한 적이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인 백자처럼 남북한의 관계도 "하얗게, 하얗게" 거짓과 폭력의 얼룩 없이 깨끗해질 수 있을까?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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