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반도체산업협회 회장단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9일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반도체협회 회장단 간담회'에서 만난 업계 한 인사는 정부가 마련하겠다고 밝힌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K-반도체 벨트 전략)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말 차량용 반도체를 시작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 대란이 빚어진 지 4개월여만에야 뒷북 대응에 나선 정부에 대한 착찹함이 배여나는 표정이었다.
완성차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현대차 (235,000원 ▲4,000 +1.73%)가 오는 12~13일 이틀 동안 브랜드 대표 세단인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의 가동을 중단키로 했다. 현대차는 소형 SUV(다목적스포츠차량) '코나'를 양산하는 울산1공장도 지난 7일부터 14일까지 가동 중단한 상태다.
자동차업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반도체 부족 사태가 다른 제품으로 확산하면서 스마트폰, 가전 등도 생산 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고동진 IM(IT&모바일) 부문 사장도 지난달 17일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 2분기 스마트폰 생산 차질 우려를 내비쳤다.
건의문에는 R&D(연구개발)나 제조시설 투자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를 대기업 기준으로 6%에서 50%까지 확대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반도체 제조시설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때 전력·용수·폐수처리 등 인프라를 지원하고 인허가를 간소화하는 한편,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학과를 신설, 정원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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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생산라인을 하나 건설하는 데는 15조원 안팎의 투자금이 들어간다. 막대한 자금 탓에 투자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지만 어렵사리 결단해도 정부 인허가를 받는 과정이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상당하다. 생산라인을 준공하고도 양산하기까지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이 투자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정책 지원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인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간담회에서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이 자국반도체산업 육성 정책과 프로젝트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방위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반도체 설비투자액의 40% 세금면제 등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2일 백악관 안보보좌관 주관으로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을 초청해 진행하는 반도체 공급 대책 회의도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파격에 가까운 반도체산업 육성 정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일단 업계의 요구를 최대한 수렴하겠다는 입장이다. 성윤모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정부 차원에서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첨단 반도체 제조의 글로벌 공장으로 조성하고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며 "업계 건의를 반영해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종합정책을 수립해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종합정책은 다음달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시기는 늦었지만 내용은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미국이나 EU가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삼성전자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또 돌려막기 대책을 내면 그땐 정말 답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