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을 중단하지 않으면 오는 14일부터 모든 개인 배송을 중단하겠다"고 주장했다. 반면 입주민들은 어린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지상입차 금지조치를 철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단지 내 수백명의 학생이 오가는데다 탑차에 의한 시설 훼손이 심각하다고 반박한다.
허리를 제대로 펴기 힘든 높이의 저상 탑차(오른쪽)와 일반적인 높이의 탑차(왼쪽). / 사진 = 오진영 기자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날 "입주민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누군가는 허리가 부러져야 한다면 그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다"며 "하루 수백개의 택배 물품을 실어야 하는데 저상 탑차를 3,4개월 이상 타면 누구든 허리 통증을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저상탑차를 이용하는 택배기사들은 6개월 정도 되면 대부분 그만두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실제로 탑승해 본 저상탑차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무릎을 굽히지 않으면 내부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가벼운 짐을 들 때에도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어 제대로 손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저상탑차 내부에 머무른 3분 남짓한 시간 동안에도 무릎과 허리가 아파왔다.
허리 통증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인 탑차를 사용했을 경우 '손수레 배송'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택배기사들의 주장이다. 이 아파트는 53개동에 약 5000세대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다. 정문에서 후문까지의 거리는 약 1km에 달하며 하루 택배 물량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서는 수십 번 이상 왕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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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한 택배기사는 "지난 화요일 동료 택배기사와 함께 이 아파트에서만 400여개의 물품을 날랐다"며 "동료 2명이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 되서야 끝났고, 동료는 약 20km인 4만보 이상을 넘게 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택배기사는 물품 하나하나가 돈인데 물량을 줄일 수가 없어 암담하다"고 했다.
"단지 안에 아이들만 수백명, 이미 90%는 저상탑차로 바꿨다"
택배차량의 지상 입차를 금지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택배차량의 옆을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다. / 사진 = 독자 제공
입주민 고모씨(65)는 "탑차가 많이 들어오는 오전 시간이 되면 유치원에서 아파트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한다"며 "탑차가 지상으로 돌아다니던 동안 위험천만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한 입주민은 "이미 90% 이상의 택배기사들이 저 탑차를 이용 중"이라며 "하교 시간이 되면 수백명의 학생들이 뛰어다니는 장소인데 탑차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어떻게 갑질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입주민은 "전국에서 450여개의 아파트가 탑차 출입을 막고 있는데 유독 우리에게만 '갑질 아파트'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아파트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택배사와 저상차량을 놓고 협의중이며, 이마트나 우체국택배 등 대부분의 택배사는 저상탑차를 이용해 배송하고 있다"며 "지상에 도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탑차가 오갈 경우 보도블럭이나 화단이 훼손되는 등 그간 피해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