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호갱님'된 은행들…빅5 작년 출연금 3500억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21.04.0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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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호갱님'된 은행들…빅5 작년 출연금 3500억


은행들이 지방자치단체 금고지기를 자처하며 내놓은 출연금이 해를 거듭할 수록 늘고 있다. 올해도 대전시, 강원도, 제주도 등의 금고를 놓고 은행들은 한바탕 경쟁을 벌여야 한다. 쉽게 지자체 금고를 포기할 수도 없어 당분간 ‘출연금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5일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에 따르면 이들 5개 은행은 지난해 3458억원을 출연금으로 썼다. 2019년 3391억원에 비해 2.0% 증가한 규모다. 출연금은 금고 선정 과정에서 지자체에 헌납하는 일종의 후원금이다.



은행별로 보면 △신한 1534억원 △우리 714억원 △농협 691억원 △국민 282억원 △하나 237억원 등이다. 우리은행이 이전 연도(790억원)에 비해 76억원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 모든 은행들의 출연금이 늘었다. 우리은행도 출연금 지출을 줄였다기보다는 코로나19로 지자체들이 행사 등 일정을 미루는 바람에 지출 시기가 해를 넘기면서 착시효과가 생겼을 뿐이다. 사정은 모든 은행들에 똑같이 적용된다. 올해나 내년 반영될 출연금 증가율은 지난해 2.0%를 크게 웃돌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고 선정 과정에서 은행들이 써낸 출연금을 연 단위로 나눠 납입하는데 지난해 지자체들마다 크고 작은 행사를 미루는 바람에 예산 집행 시기가 미뤄졌다”며 “출연금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5대 은행 출연금이 3000억원을 넘어선 건 2019년부터다. 신한은행이 서울시로부터 금고를 유치하면서 2019년부터 4년간 3000억원을 내놓기로 한 게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2018년 출연금이 496억원에 머무르다 2019년이 되자 1524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올해도 대형 지자체 금고 유치 경쟁이 예고된 상태다. 연간 예산이 5조원대에 이르는 대전광역시는 연말 금고 계약 종료를 앞뒀다. 강원도와 제주도 역시 연내 8조원, 6조원 규모 금고 계약을 갱신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60여 크고 작은 시·군의 금고를 놓고 은행들이 경쟁해야 한다. 일부 은행은 벌써부터 금고 유치를 위한 탐색전과 함께 전략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지자체 금고지기 자리를 탐 내는 건 매년 수천억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지자체 세입·세출을 관리하며 예치금을 운용할 수 있어서다. 사실상 조달 비용이 제로에 가까워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금)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공무원과 가족, 산하기관을 잠재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과도한 출연금으로 인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회계상 부담을 덜고자 2019년 지자체 금고 관련 무형자산으로 5836억원을 반영했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감액을 요구 받았다. 또 서울시 전산시스템 구축비 지원 등 불건전 영업 행위로 21억원 과태료와 관련 직원들에 대한 징계처분까지 감수해야 했다.

은행들은 당국의 개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출연금 부담에도 불구하고 무형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봐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과도한 출연금 경쟁이 은행 수익성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인터넷 은행까지 가세한 마당에 지명도를 이어가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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