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자료 안냈던 157개 '올드드럭' 임상 재평가 시험대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2021.04.0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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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자료 안냈던 157개 '올드드럭' 임상 재평가 시험대


정부가 해외의약품집 수재 조항에 따라 임상시험 자료 등을 내지 않고 당국의 품목허가를 받았던 의약품의 임상 안전성·유효성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올해안에 관련 조항을 삭제하기로 하면서 해당 조항을 적용받아 시판되던 '올드드럭'들이 재평가 시험대에 올랐다.

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의 해외의약품집 수재(8개 선진국서 사용한 실적 있는 의약품의 경우 임상시험 근거·자료 없이 의약품 허가) 조항이 연내 폐지를 앞두고 있다.



제25조의 관련 조항을 삭제한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은 지난달 2일 행정예고 기간이 완료됐다. 아직 규제개혁위원회 검토 절차가 남아있지만 해당 조항은 국회의원, 감사원 등을 통해 삭제 요청을 꾸준히 받았던 부분이라 큰 무리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는 규제영향분석서를 통해 최근 5년간 63개 품목의 일반의약품이 해당 조항을 적용받아 8개 국가에서 발간된 의약품집 수재 사항을 근거로 안전성·유효성 심사 면제받았다고 밝혔다. 8개 국가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캐나다 △일본 등이다.



해당 조항은 1970~1980년대 우리나라의 의약품 개발능력이 높지 않았던 상황에서 국산 의약품 생산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이 외국의약품집 수재 같은 이유로 자료를 면제 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지난 2018년 국정감사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감사원도 지난해 '의약품 안전관리실태' 감사 보고서를 통해 해당 조항을 수정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식약처는 "8대 의약품집에 수재된 자료를 인정했던 사항을 개선해 전문의약품의 독성, 약리, 임상시험자료 등 구체적인 입증 자료를 검토하겠다"며 "그간 면제했던 의약품의 허가심사 제출 자료 요건을 정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규제 정비와 함께 과거 해당 조항을 적용해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면제받은 의약품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초 '건강보험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계획'을 공고하고 △비티스비니페라(포도씨 및 포도엽 추출물) △아보카도-소야 △은행엽엑스 △빌베리건조엑스 △실리마린(밀크씨슬추출물) 등 총 5개 성분, 157개 품목(98개 제약사)에 대해 급여재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급여재평가는 의약품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등을 따져 급여기준의 적정성을 재검토하는 제도다. 지난해 치매 치료제인 콜린알포세레이트가 급여재평가 최초 대상으로 선정, 평가 끝에 급여 기준 축소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올해 급여재평가 대상으로 선정된 5개 성분의 시장규모는 1661억원에 달한다. 이중 엔테론정(한림제약), 이모튼캡슐(종근당), 타나민정(유유제약) 등은 시장에서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품목이다. 매출액의 10~20%를 차지하는 중대형 품목이 급여재평가를 통해 허가가 취소될 경우 중소제약사로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일부 중소제약사는 약품 매출액과 임상재평가 부담을 저울질한 끝에 자사 제품의 허가를 취소하기도 했다. 유유제약은 은행엽엑스의 주사제제인 타나민주, 유카민주를 2월 16일 허가 취하했으며, 위더스제약도 트나민주의 허가를 취하했다. 해당 기업들이 재평가를 피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시장 퇴출을 결정한 것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칫 재평가로 허가가 취하되거나 일부 적응증이 삭제될 경우 그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아온 청구 금액 전액을 환수당할 가능성도 있다"며 "매출액 규모가 크지 않은 약품의 경우 자체 허가취소가 더 나은 결정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올해 3분기 내로 5개 성분 의약품에 대해 급여 적정성을 재평가한 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하겠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선 자칫 콜린알포세레이트에 이어 대규모 소송전이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급여재평가 대상이던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지난해 8월 제약사 78곳이 복지부를 상대로 개정고시 취소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해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개정된 급여기준의 효력이 정지됐다.

복지부는 즉시항고, 재항고를 통해 제약사 소송에 맞대응하고 있다. 소송으로 인해 발생한 비용과 급여축소 집행정지로 인한 재정손실 보전 방안 등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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