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그날, 증권사가 흔들리자 시스템이 휘청였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1.04.0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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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금융당국 뿐만 아니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단순히 코로나19(COVID-19)로 인한 주가폭락 때문이 아니었다.

대규모로 몸집을 불린 증권사의 유동성 위기가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기 직전이던 때다. 증권사를 금융시장의 변두리 정도로 인식해오던 정부의 시각은 안이했다. 기재부와 한은은 증권사 위기가 외환·회사채 시장으로 급속도로 번지자 "언제 증권사가 이렇게 커졌냐"며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ELS 마진콜이 뒤흔든 금융시스템
1년전 그날, 증권사가 흔들리자 시스템이 휘청였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 사태는 주요국 증시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주가연계증권(ELS)의 주요한 기초자산인 'Eurostoxx50', 'S&P500' 등 해외지수가 동시에 급락했다.

특히 '유로스탁스50'은 2017년 이후 2900포인트 이하로 하락한 적이 없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약 3주만에 2400포인트 이하로 37% 급락했다.



지수급락에 ELS 자체 헤지 증권사가 보유한 선물·옵션 포지션에서 큰 평가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증권사가 해외지수 ELS를 발행하는 경우 자체헤지(위험분산)를 위해 해당 지수선물의 매수포지션을 취한다. 하지만 지수가 급락하면서 대규모의 추가 외화증거금 수요, 즉 마진콜이 발생했다.

자체적으로 위험을 헤지하는 주요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등으로 지난해 3월말 ELS 자체헤지 잔액은 25조3000억원에 달했다. 일일 최대급락 폭을 보인 3월12일(유로스탁스, -12.4%)엔 대규모 마진콜이 발생해 다음날인 13일에 약 3조원의 외화가 송금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외화수요 폭증에 환율급등, 단기사채도 휘청
1년전 그날, 증권사가 흔들리자 시스템이 휘청였다

외화수요가 폭증하면서 환율이 급등했다. 당시 1200원선에서 등락하던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 후반까지 올랐다. 장중 1296원까지 상승하며 1300원선까지 위협했다.

증권사 보유달러만으로 증거금을 납입하기엔 마진콜 규모가 지나치게 컸다. 이에 리스크는 단기금융시장으로 번졌다.

증권사는 외화조달에 필요한 원화를 CP(기업어음)·단기사채 시장에서 조달하면서 발행수요가 크게 늘었다. 단기간에 수요가 급증하자 CP금리가 급등하고 발행액도 크게 감소(△3월 133조원 △4월 101조원 △5월 95조원)했다.

증권사의 유동성 해소과정에서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자 실제 CP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던 중견·중소기업들의 자금 경색은 심각해졌다. 4월 이후 저신용 회사채 중심으로 경색이 발생했고 코로나로 인해 기업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의 이중고가 이어졌다.

이에 한은은 부랴부랴 한·미 통화스와프 600억달러를 체결해 환리스크를 완화했고 금융당국은 일시적으로 증권사의 콜 차입한도 비율을 자기자본 15%에서 30%로 완화해 차입여력을 확대했다. 이같은 당국의 전방위적인 지원 속에 겨우 진정세를 찾았지만 시장이 겪은 충격은 컸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영향력 커진 증권사
연일 급락중인 코스피가 8.39% 하락한 1,457.65p로 마감된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닥은11.71% 하락한 428.35p, 원달러환율은 40원 오른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연일 급락중인 코스피가 8.39% 하락한 1,457.65p로 마감된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닥은11.71% 하락한 428.35p, 원달러환율은 40원 오른 1,285.7원으로 마감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이번 사태로 단기간에 크게 성장해 영향력을 키운 증권사는 시장을 흔들 수 있는 주체로 각인됐다. 이는 증권사의 대형화를 유도한 금융당국의 정책 영향이 컸다.

당국은 기업금융 활성화를 위해 종합금융투자사업자(2013년 10월), 초대형IB(2016년 8월) 제도를 도입하며 증권사들의 자산규모가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의 자산규모는 2014년말 313조5000억원에서 지난해말 608조8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여전히 은행을 중심으로 외환수요·공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증권사의 외화시장 영향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증권사의 외화자산과 외화부채 규모는 각각 987억9000만달러, 930억달러로 지난 2016년 대비 5년만에 281.1%, 480.9% 늘었다. 절대금액이 높은 은행이 같은기간 34.9% 35% 늘어난 것과 비교해 독보적인 증가세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 규모가 확대돼 ELS 발행규모와 단기자금 조달규모, 비중이 커지면서 증권사의 외화시장 및 단기금융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대폭 증가했다"며 "지난해 상반기에 불안했던 FX스왑시장과 CP·단기사채 시장은 하반기 들어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올해도 코로나19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 부분의 이슈가 자본시장을 통해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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