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굴기(일어섬)'를 두고 반도체업계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일주일새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인텔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진출 선언과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산업 지원책 발표, 마이크론·웨스턴디지털(WD)의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 추진 소식이 이어지면서다.
첨단산업의 핵심부품인 반도체 생산을 더 이상 삼성전자나 TSMC 같은 해외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미국 정부와 기업의 단결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새로운 경쟁체제에 총성을 울렸다는 평가다.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각각 인수전에 나선 것인지, 공동으로 인수에 나선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인수가 성사되면 국내 반도체업계에는 양날의 칼이 된다. 낸드플래시 시장이 6강 체제에서 4강 체제로 재편되면서 경쟁자 수가 줄어드는 반면, 덩치가 커진 미국업체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파운드리 시장이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초미세공정 기술에서 5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에 이어 3나노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와 TSMC에 비해 인텔은 7나노 생산에도 애를 먹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력과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겸한 인텔이 조만간 격차를 좁힐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패권주의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일어섬)와는 현실가능성이나 파급력에서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천기술 없이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면서 미국의 견제에 시달리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반도체산업의 출발지로 이미 막대한 핵심원천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반도체 시장의 큰손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반도체 관련 핵심 특허를 다수 보유한 IBM의 손을 잡은 인텔이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발판으로 영향력을 키우면 아마존이나 구글,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이 인텔로 기울 가능성도 높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미국 반도체의, 미국 반도체를 위한, 미국 반도체에 의한' 신(新)냉전의 서막이 오른 것 같다"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