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각 사가 ‘따로 함께’ 연주한 공통된 주제가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다. 2019년에 현대차가 공개했던 ‘2025전략’의 요체다. 현대차는 지능형 모빌리티를 구현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솔루션’이라는 개념에 포괄해서 제공한다는 미래 구상이다. 이번 시즌 주총에서는 그 주제를 전륜격인 현대차와 기아차가 바이올린 파트로 연주했고 후륜격인 모비스, 위아, 글로비스가 각각 관악, 비올라, 첼로 파트로 연주했다.
모비스는 항공모빌리티·로봇 부품 제조·판매업을 사업 목적에 포함하는 정관 변경안을 가결했다. 부드러운 선율에 악센트를 주면서 연주 전체를 탄탄하게 하는 관악 파트의 역할이다. 위아와 글로비스도 안정감을 주는 각기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내용의 이사선임이 있었고 ESG경영 구체화로 이사회 내에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신설됐다. 매년 회사의 안전과 보건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이사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도 정관에 신설됐다. 현대차의 경우 "탄소중립 전략과 연계한 수소사업 확대 등 현대차만의 ESG경영 방식을 구축하고, ESG 강화 활동들을 통해 고객가치 제고의 기회로 적극 활용할 방침"을 밝혔다.
이번 주총을 계기로 정몽구 명예회장은 모비스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나 총감독 겸 지휘자 정의선 회장 체제가 본격 가동했다. 지난 3월21일은 현대 창업자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20주기이기도 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이제 다음 세대 후배들을 충분히 신뢰해서 믿고 맡긴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고 무거운 책임을 이양한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제2창업자일 뿐만 아니라 대주주이기 때문에 다른 경영자들의 경우와는 달리 회사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계속 회사와 같이하면서 신용을 보강해줄 것이고 글로벌 주주와 고객, 금융시장은 그 점을 염두에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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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보기에 이번 연주의 하이라이트는 정 명예회장이 사임한 자리에 상무급 R&D(연구·개발) 담당 임원이 선임됐다는 사실이다. 직급보다 전문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는데 서구에서도 잘 볼 수 없는 기능적 어프로치다. 그러나 동시에 고도로 정치적인 메시지로 읽힌다. 모비스 주주들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 현대차의 비전은 물론이고 인사정책이나 성과보상체제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차의 주주, 이사회, 경영진이 어떤 뜻을 가졌든 상관없이 필자는 현대차의 이번 주총이 ESG경영과 투자가 시대적 조류이기는 하지만 기업의 성공에 중요한 것은 사업 목적과 지배구조 못지않게 결국 기술과 인재라는 내면의 주제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번 주총을 통해 보인 현대차의 의지와 미래 비전이 자못 전향적인 동시에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