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라면쟁이·스낵쟁이'라 부른 신춘호의 장인정신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1.03.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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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농심회장 별세]

(서울=뉴스1) =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농심에 따르면 27일 신 회장은 이날 오전3시38분 지병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주식회사' 창립,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농심 제공) 2021.3.27/뉴스1   (서울=뉴스1) =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농심에 따르면 27일 신 회장은 이날 오전3시38분 지병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주식회사' 창립,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농심 제공) 2021.3.27/뉴스1


27일 작고한 신춘호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중 셋째 아들이다.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 등 3남2녀를 뒀다.



1958년 대학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다"며 라면을 개발했다.

(서울=뉴스1) =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농심에 따르면 27일 신 회장은 이날 오전3시38분 지병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주식회사' 창립,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사진은 1980년 신 회장 유럽출장 당시 모습.(농심 제공) 2021.3.27/뉴스1   (서울=뉴스1) =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향년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농심에 따르면 27일 신 회장은 이날 오전3시38분 지병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별세했다. 신 회장은 1965년 '롯데공업주식회사' 창립, 신라면·짜파게티·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사진은 1980년 신 회장 유럽출장 당시 모습.(농심 제공) 2021.3.27/뉴스1
"한국적인 맛, 이름은 특성이 드러나야 한다"
신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했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성공장 설립때에도 신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 회장은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면서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에는 반대했다. 서양인에게 적합하게 개발된 것이지 한국적인 맛을 구현하는데 최적의 설비는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별도로 주문했다.

신라면신라면
브랜드 전문가로 명성, 최고 역작은 '신(辛)라면'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명성이 드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 회장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이어서 신라면은 출시부터 화제가 됐다.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다. 신 회장은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고 전해진다.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라면으로 등극했고 이후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고급화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라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신 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명품’으로 선정했을 때와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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