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잇달아 터진 ‘n번방’, ‘박사방’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경찰은 수사를 강화했지만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엔 여전히 성착취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 영상들을 지우며 피해자들과 함께 싸우는 이들이 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피해자지원센터. 이곳에서 근무하는 박 팀장은 “심리적 장벽이 느껴져 선뜻 나서기 어렵겠지만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야한다”고 말한다.
아이돌 합성 성인 딥페이크물이 올라온 텔레그램 채팅방에 이주를 지시하는 문구가 작성돼 있다 /사진=뉴스1
디지털 성범죄는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텔레그램을 상대로 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디스코드 등 다른 해외메신저에 성착취 영상을 옮겨 거래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경찰 수사로 인한 서버 제거에 대비해 ‘대피소 서버’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음성을 합성해 만든 가짜영상물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착취 영상도 등장했다.
하지만 센터 역시 기술지원 및 인력을 늘리는 등 맞서고 있다. 23일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지난해 총 15만8760건의 영상삭제를 지원했다. 이 숫자는 2018년 2만8879건, 2019년 9만5083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센터에서 지원을 받은 피해자도 4973명으로 전년대비 2.4배가량 늘었다. 센터에선 지금도 하루에 630여개의 영상물을 지우고 있다.
신고가 접수되면 센터는 △유포 범위 파악 △긴급 삭제 지원(플랫폼 삭제요청,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단요청, 경찰 제출 채증자료 작성) △재유포 여부 확인 등을 한다.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유포현황을 파악하는 모니터링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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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는 현장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박 팀장은 “피해 사실을 밝히기 위해 (성적) 촬영물을 공개해야하는 부담이 있고,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라는 꼬리표에 신고를 하기까지 심리적 장벽을 느끼는 피해자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센터는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내달라고 당부한다.
현재(2021년 3월 기준) 센터에는 39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n번방’, ‘박사방’ 등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이후엔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동시에 성착취물을 매일 봐야하는 어려움도 있다. 지원센터 직원들은 감정노동자보호법 보호 대상에 해당된다. 2018년부터 예산을 확보해 일대일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 디지털 성범죄 관련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극 동의한다. 피해자들을 만나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난해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수성을 반영한 양형기준을 설정할 수 있도록 양형위원회에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박 팀장은 “최근 조주빈(박사방 운영자)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것처럼 보다 엄격한 양형기준을 바탕으로 가해자를 처벌하는 판례가 쌓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