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금 '160조'도 그림의 떡?…증권사들이 시큰둥한 이유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21.03.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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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금 '160조'도 그림의 떡?…증권사들이 시큰둥한 이유


올해 IPO(기업공개) 시장 초호황으로 160조원이 넘는 증거금이 몰렸지만 증권업계에겐 '그림의 떡'이다. 조 단위 천문학적 증거금이 몰려도 이자수익은 수억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공모주만 노린 일회성 자금이어서 다른 금융상품으로 유입이 쉽지 않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지난 21일까지 나온 IPO(기업공개) 기업 24곳(스팩·리츠 제외)에 몰린 일반 청약 증거금은 161조6051억원에 달했다. 지난한해 IPO 기업 70곳에 몰린 341조5205억원의 약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이 청약 증거금을 통해 벌어들인 이자는 약 8억85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청약증거금은 투자자들이 공모주 청약을 위해 상장주관사 및 인수회사(증권사) 등에 맡기는 돈이다. 증권사가 청약증거금을 가지고 있다가 공모주 배분 후 투자자에게 되돌려 주기까지 통상 이틀 정도가 걸린다.

청약증거금은 규정상 한국증권금융에 예치하도록 돼 있다. 증권금융은 증거금을 맡았다가 원금에 이자를 더해 증권사에게 돌려준다. 이때 발생하는 이자가 청약증거금 이자다. 현재 증권금융의 청약 증거금 예치 이자율은 연 0.1%다.



증거금은 160조원을 넘지만 기준금리(0.5%)에도 못 미치는 이율과 이마저도 이틀치만 받는 점을 고려하면 이자는 수억원대에 그친다. 예컨대 역대 최대 증거금인 63조6198억원을 모은 SK바이오사이언스도 증거금 이자를 추산하면 3억4800만원이다.

가장 많은 증거금이 모인 NH투자증권(23조4662억원)의 이자 수익은 1억2800만원, 한국투자증권은 8900만원, 미래에셋대우는 7500만원으로 추산된다.

10일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SK바이오사이언스 청약을 위해 상담 대기하고 있다. /사진=NH투자증권 제공10일 NH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SK바이오사이언스 청약을 위해 상담 대기하고 있다. /사진=NH투자증권 제공
또 공모주만을 노린 단기 자금이 대부분이다 보니 다른 투자수단으로 유도하기 쉽지 않다. 특히 올해부터는 균등배정 도입으로 복수 증권사의 신규 계좌 개설 수요가 늘다 보니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주요 은행 신용대출 잔액 추이를 살펴보면 더욱 확연하다. 지난 19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35조1266억원으로, 이달 고점이었던 10일(139조9972억원)과 비교해 7거래일 만에 약 5조원가량 급감했다.

지난 10일은 SK바이오사이언스 일반 청약 마감날이었다. 앞서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2월 말 135조1683억원이던 5대 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10일 139조9972억원으로 4조8289억원 급증했다.

공모주 청약 증거금 환불 및 따상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이틀 연속 상한가) 실패로 인해 주식시장으로 이동한 '빚투(빚내서 투자)' 자금이 은행으로 되돌아온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빅히트}, {카카오게임즈} 등 대형 공모주 청약 당시 콘솔형 게임기나 노트북 등을 경품으로 지급하며 '증거금 유치'에 나서던 증권사들도 올해는 사뭇 조용히 지나갔다.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주 청약 증거금은 유동성이 강하다 보니 다른 금융상품에 재투자되기보다 은행 등으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대부분"이라며 "지난해 이벤트를 시행한 증권사 대부분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센터 관계자는 "공모주 청약이 지점에 (수익적으로) 도움이 되기보단 서비스 차원에서 하는 행위"라며 "최근엔 신규 계좌 개설을 위해 지점 방문 고객이 몰리다 보니 손도 많이 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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