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WOW 주총, 트렌드로 자리잡나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조준영 기자, 구단비 기자 2021.03.21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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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기업들의 지난해 경영성과를 승인받고 신구 경영진 선임을 비롯한 주요 사안을 논의하는 3월 정기주주총회가 한창이다. 매년 주주총회는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돼 왔으나 올해는 예년과 다른 점이 다소 관측된다. 이를 압축하는 키워드가 ‘W·O·W’인데 풀어보면 WAR(의결권 전쟁), ONLINE(온라인 주총), WOMEN(여성 임원)이다.

피 마르는 의결권 전쟁, 경영권에 사활




뜨거운 WOW 주총, 트렌드로 자리잡나


의결권은 어느 주총에서나 중요하지만 특히 올해는 경영권 분쟁을 겪는 기업들이 많아 전쟁 이상의 체감도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표 계산으로 바쁘다. 올해부터 감사 분리선임 및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서 예년보다 팽팽한 표대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장을 달궜던 한진그룹과 사모펀드 KCGI의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조카의 난’이라 불리는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회사 노조에 이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도 오너인 박찬구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카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다소 밀리는 모양새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결과는 오는 26일 주주총회 결과로 판가름난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상무가 배당확대 및 이사진 교체 등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은 박 상무가 금호석화를 상대로 낸 의안상정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박 상무가 낸 의안은 전년 대비 7배 가량 늘어난 고배당을 반영한 재무제표를 승인하라는 것이었다.


서울지법이 고배당안을 이달 주총에 상정하라고 결정하면서 남은 2주간 의결권을 모으기 위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금호석화 노조에 이어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까지 박 회장 손을 들어주면서 무게추가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ISS는 박 상무가 제시한 고액배당안에 대해선 시장이 어려울 때 회사에 재무적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상무 본인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건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득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30일 열릴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지주사) 주총에선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을 놓고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사장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 형제 간 표대결이 예상된다.

지난해 6월 막내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은 아버지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의 몫 23.59%를 모두 인수해 지분을 42.90%로 크게 늘렸다.

이에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조 회장이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인 의사로 내린 결정인지 판단이 필요하다"며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다.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도 청구인과 같은 자격을 갖는 참가인 신청서를 내며 분쟁구도가 형성됐다.

지난달 조 부회장은 한국앤컴퍼니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로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제안하며 선임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조 이사장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이혜웅 비알비 코리아 어드바이저스 대표를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로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사회는 각각 별도의 후보를 내세우며 오는 30일 예정된 주총에서 양측의 표대결이 이뤄지게 됐다. 조현범 사장은 한국앤컴퍼니에서 42.90%를 가진 최대주주지만 지난해 상법개정으로 의결권을 3%로 제한 받는다.

GC녹십자를 공동 경영하고 있는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 측과 조카인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사장도 전운이 감돈다는 관측이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재선임을 논의하는 녹십자홀딩스 주주총회(25일)가 주목된다.

한진칼 경영권을 두고 조원태 회장과 분쟁을 벌였던 3자연합(조현아 전 부사장·KCGI·반도건설)은 별도의 주주제안을 내지 않으면서 올해 주주총회에선 정면대결이 이뤄지지 않게 됐다.

다만 한진그룹 물류회사인 한진에 사모펀드 운용사 HYK파트너스가 제시한 △배당금 확대 △감사위원 구성변경 등이 주주총회 안건에 오르며 이번 주총에서 표대결이 이뤄진다.

한진 이사회는 주당 배당금으로 600원을 제시했지만 HYK 측은 1000원을 제안했다. 2019년 500원에서 두 배 올린 금액이다.

한진칼 및 특수관계인은 한진에서 27%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9%대에 불과한 HYK와의 격차가 크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이 고배당을 선호할 수 있어 일부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프라인은 선택, 온라인은 필수··· 자리잡는 비대면 주주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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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주총은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비대면 행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나왔는데 코로나19 이후 국면에서도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 온라인 회의 등 비대면 문화가 정착했고 지난해 증시 급등으로 개인 투자자 숫자도 폭증했다”며 “오프라인 현장 주주총회에서 이를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포스코는 처음으로 정기주총을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했다. 참석하지 못하는 주주들은 온라인으로 현장을 참관했고 의결권 행사는 사전에 접수한 전자투표를 통해 이뤄졌다. 삼성전자도 올해 처음 온라인 정기주총 생중계 방식을 도입한다. 2018년 초 액면분할로 개인주주 숫자가 크게 늘어난 터라 온라인 주총이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했다.

SK텔레콤, 현대차, 카카오 등도 온·오프라인 주총을 병행할 예정이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크게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3월 14~20일) 예탁원 전자투표시스템을 통해 전자투표·전자위임장을 이용하는 상장법인은 총 376곳이다.

올해 주총 키워드에 WOMEN(여성임원) 꼽힌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내년 8월 시행될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 또는 자본금 2조원 이상인 모든 상장사는 남성 또는 여성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한다.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내년 8월부터면 핑계를 댈 수도 없다. 법이 아니어도 최근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때문에 상장사 주총 안건을 보면 사외이사에 여성을 발탁하려는 사례가 많다. 한 상장사 인사 담당자는 “여성인재를 내부승진시키는 것이 바람직 하지만, 업무적 특성과 육아·출산 때문에 여자 부장도 없는 상태”라며 “이번 주총에서 외부인재로 여성 사외이사를 먼저 선임한 후 내부발탁을 순차적으로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가 지난달 공개한 기업 사외이사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100대 기업 사외이사 441명 중 남성이 406명으로 92.1%을 차지했다. 여성은 35명으로 7.9%에 그쳤다.

100대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1명이라도 있는 곳은 30곳이다. 70개 기업은 여성 사외이사가 전무했다. 다만 법 시행을 앞두고 여성 사외이사의 비율이 20%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여풍당당, 사외이사 여성임원 추천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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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들도 개정안 시행에 맞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이정미, 박순애 두 여성 후보를 포함했다. LG그룹도 (주)LG, LG유플러스 등 5개사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 변화를 꾀한다.

기아차도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현대모비스는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리천장을 극복하는 노력이 시작된 셈이다.

한화그룹 주요 상장사들도 여성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다양성과 전문성을 강화한다. (주)한화는 박상미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를 추천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김현진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이선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여성 사외이사 2명을 선임할 계획이다.

GS건설도 조희진 법무법인 담박 대표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다양한 업계에서 사상 최초 여성 이사 선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 역시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집중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 중 KB·신한·하나는 이미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KB금융은 최명희·권선주 이사 등 2명의 여성 사외이사를 뒀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윤재원 홍익대 교수를 선임했다.

하나금융은 차은영 사외이사가 올해 6년 임기를 채워 권숙교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여성 사외의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다만 우리금융은 이사회 내 여성이 없다. 올해 재선임하는 사외이사 4명 모두 남성이다.

지방 금융지주 3사도 여성 사외이사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JB금융지주 전부 현재 남성 사외이사들로 꾸려졌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도 남성으로 교체한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국내 상장기업의 여성이사 선임 비중은 매년 완만하게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낮은 비중”이라며 “여성이사의 선임은 이사회 성별 다양성 확보를 통한 효과적인 감독기능 수행으로 기업가치를 제고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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