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20주기 아산의 기업가정신[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3.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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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0년전 세상을 떠난 아산(峨山)은 서거 1년여 전인 2000년 1월1일 0시 머니투데이 창간 첫 송출기사(기고: 세상의 변화가 여전히 멋있다)에서 자신을 '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4년전인 1915년에 태어나 여든 다섯의 나이에 2000년의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제조업의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로의 변화가 자신에게도 분명 인식되고 있음을 느낀다며 젊은 기업가들도 긴호흡으로 세상에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한국 재계의 거목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우리 곁을 떠난지 21일로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그가 가진 긍정적인 사고와 불굴의 도전정신은 아직도 우리 곁에 남아있다.

1930년대 쌀가게에서 시작한 사업은 지금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해상화재보험, 한라그룹, 성우그룹, 한국프랜지공업, 현대산업개발그룹, KCC그룹으로 나뉘어지긴 했지만 모두가 아산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다.



현대그룹의 성장배경을 두고 일각에선 아산이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한국전쟁에 이은 각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줄을 대 정부 수주 공사를 싹쓸이하는 특혜를 입은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산의 일생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눈감고 코끼리 다리 만지기'와 같은 평가다.

아산은 사실 그와 같은 꼬리표를 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해 성공한 해외시장 개척자다. 자유당 정권을 무너트리고 들어선 민주당 정권이 1960년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잡아들이는 것이었다. 1961년 부정축재처리법을 도입하자 아산은 정치권과 엮이지 않기 위해 베트남과 태국 등 해외 건설사업으로 눈을 돌렸고, 이것이 현대건설 경쟁력의 기반이 됐다.

일례로 호사가들은 1968년 2월 건설을 시작한 경부고속도로의 주사업자에 현대건설이 선정된 것이 특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앞서 해외 진출에 나서 1965년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를 건설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기업이 현대건설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 선거에까지 나가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긴 했지만, 아산은 '기업가는 사회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했다. 기업가가 얼마나 잘 갖추고 얼마나 잘 누리고 사냐느갸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한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욕심을 가지되, 욕심을 버리라고 했다. "일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돈에 대한 욕심은 버리라"는 것. 아산은 젊은이들에게 기업경영을 단기적으로 목돈 한번 챙기는 정도로 간주하는 습벽을 물리치라고 신신당부했다. 더 큰 꿈을 꾸라는 얘기다.

아산은 기업의 주인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그는 "기업은 규모가 작을 때는 개인의 것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종업원 공동의 것이요, 나아가 사회와 국가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우 옛날 쌀가게를 했을 무렵까지는 자기 자신의 재산이었지만 그 이후의 넘치는 재산은 청지기로서 위탁받아 관리하는 것 뿐이라는 '청지기론'을 펴기도 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이상의 것은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척도를 돈으로 삼지 말기를 바랐다.

아산은 한창 자랄 나이에 굶기를 다반사로 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농사일을 할 때도 자신의 처지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이런 긍정적 사고가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다.

아산은 머니투데이에 보낸 두번째 기고문(2000년 1월 10일, 모두 승자가 될 수는 없다)에서 시련을 이기고 실패하지 않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95% 실패는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다시 도전하는 것이 인생이다."

다시 일어나 할 수 있는 기반은 신용인만큼 절대 시련을 겪더라도 신용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한번 쓰러지더라도 신용을 기반으로 일어날 수 있는 체력을 갖추라는 것, 이것이 아산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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