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성난 2030, 촛불 꺼내들었다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2021.03.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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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손모씨(27)는 최근 5평짜리 원룸형 자취방에 같이 살 동거인을 구하고 있다. 월세 40만원을 혼자 부담하기 힘들어서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사태를 바라보는 손씨의 마음은 복잡하다. 코로나19(COVID-19)로 취업까지 어려운데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려서다. 손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구하려고 하는데 그것마저 코로나로 어렵다"며 "나와 달리 정보력으로 쉽게 큰돈 벌려고 한 기득권층을 보니 화가 난다”고 한숨을 쉬었다.



“월세 내기도 벅찬데”…SNS에선 풍자물 공유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LH 땅투기 임직원들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청년진보당 제공) 2021.3.9/뉴스1  (서울=뉴스1) 김진환 기자 = 청년진보당 관계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LH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LH 땅투기 임직원들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청년진보당 제공) 2021.3.9/뉴스1


LH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2030세대의 분노가 거세다. 온·오프라인 공간을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공정’, ‘정의’ 등을 중요시여긴 세대인 만큼 충격이 더 크다는 말도 나온다.

직장인 이모씨(29)는 지난해 2분기 LH가 모집했던 행복주택에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이씨는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동네 중 한 곳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며 “가진 예산에 맞는 곳이 없어 한 달 넘게 서울 방방곡곡 발품을 팔아 집을 구했는데 맥이 빠졌다”고 했다. 이씨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평생 내 집 마련은 택도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눈다.



잇달아 터지는 투기 의혹에 집단행동에 나선 젊은이들도 있다. 지난 15일 저녁 청년연대, 청년하다 등 청년단체 회원 10여명은 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청년들은 월세 전전 LH는 투기 전전’, ‘부당이득으로 내집마련 웬말이냐’가 적힌 피켓을 들고 정부의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규탄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한 참여자는 “투기 하느라 바빴던 LH 직원들이 청년주택, 기숙사건립 등에 진정성을 갖고 업무를 추진했겠냐”며 “이래서 청년과 학생들이 LH의 정책들을 어떻게 신뢰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9일엔 청년진보당 당원들이 같은 곳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9명의 당원들은 ‘땅투기 집단 LH 가족, 차명 모두 처벌하라’등 메시지가 적힌 스티커를 LH 서울지역본부 출입문에 부착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선 LH 투기의혹을 꼬집는 풍자 게시물들이 공유된다. 유명 TV 프로그램, 동화책, 유행어 등에 LH를 넣는 방식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글자를 ‘LH 혼자 산다’로 바꾸거나, 동화책 제목 ‘다 내 거야’를 ‘다 LH 거야’로 패러디한 게시물이 대표적이다.

공정 중요시 여기는 MZ세대…불공정에 분노
LH 투기를 풍자하는 온라인 게시물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LH 투기를 풍자하는 온라인 게시물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최근 리얼미터가 YTN의뢰로 ‘광명 시흥의 3기 신도시 추가 지정을 철회하는 것이 적절한지' 묻는 조사에서는 ‘지정 철회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30대(64.2%), 20대(60.9%), 40대(59.8%), 60대(58.8%), 50대(56.6%) 순으로 많았다.



리얼미터가 YTN의뢰로 지난 8~12일 실시한 국정수행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전주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연령대는 20대(9.1%p↓, 26.4%)였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취업환경과 전세금 인상 등 청년들에게 불리한 상황들이 다른 세대와 비교해 더 큰 박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LH사태는 청년들에게 부동산 진입장벽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며 “특히 중립적인 시각에서 관리를 해야 하는 공공기관에서 투기가 벌어졌다는 것에 충격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의 세대특징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세대는 공정이라는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체화한 세대”라며 “불공정을 보며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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