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후]교통딱지 끊다가 2.7억원 물어준 경찰관… 여전히 공권력은 고달프다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2021.03.19 06:30
글자크기
 서울동대문경찰서 경찰들이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일대에서 음주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2019.12.16./사진=뉴시스 서울동대문경찰서 경찰들이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일대에서 음주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2019.12.16./사진=뉴시스


#. 교통경찰관 A씨는 2012년 3월15일 저녁 8시20분쯤 서울 강남구의 사거리에서 '불법 끼어들기'를 한 고급 외제차 한 대를 발견했다. 차를 세운 A씨는 운전자 B씨(당시 43세)에게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 B씨는 10분간 불응하다가 뒤늦게 제시했지만 A씨가 범칙금 납부통고서를 발부하려 하자 이를 거부하며 면허증을 돌려달라고 했다.

A씨가 계속 단속 정보를 입력하자 B씨는 면허증을 빼앗기위해 경찰의 제복주머니와 어깨 등을 붙잡았다. 그러자 A씨는 오른팔로 B씨의 목을 감싸 안고 한쪽 발로 다리를 걸어 B씨를 돌려 넘어뜨렸다. B씨는 이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가 골절되는 등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다. 경찰관은 상해 혐의로 기소돼 2013년 벌금 5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B씨는 허벅지 골절 등으로 일할 수 없게 됐다며 국가와 A씨를 상대로 14억31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B씨는 월 1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강사였다.

B씨는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2019년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부장판사 문혜정)는 면허증을 뺏으려던 시민을 제압한 것일지라도 상해를 입힌 건 지나치다고 봤다. 법원은 A씨가 B씨에게 4억4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A씨는 항소했고 2심에서 손해배상액은 2억7066만원 정도로 줄었다. 대법원이 지난해 6월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하면서 판결 내용은 확정됐다.



경찰 공무집행 고의 방해·악성민원도 상당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판결 당시에는 경찰의 과잉 대응을 지적하는 여론과 '공권력 집행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했다.

경찰은 주취자를 계도하거나 공무집행방해 사범을 체포하는 도중에 상해를 입혀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2016년에는 한 경찰관이 주취자 난동을 제압하다 과잉대응으로 고발돼 합의금과 치료비로 수천만원을 물어주기도 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반복된다면 경찰 공무 수행이 위축될 수 있다고 토로한다. 경기도 내 일선서 소속 경찰관은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소란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신경이 곤두선다"며 "때로는 '목격자들이 경찰 편을 들어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땐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의 공무집행을 고의로 방해하는 일이나 악성 민원도 문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해 검거된 건수는 연간 1만건이 넘는다. △2015년 1만4556건 △2016년 1만5313건△2017년 1만2883건등이다. 하루 수십건씩 공무집행을 방해 받는 경찰이 업무 시 소송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당한 공무집행'→'공무수행 관련'...경찰, 금전 지원 확대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경찰청은 경찰이 민·형사 사건으로 피소됐을 때 금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2018년부터 경찰법률보험에 가입했다. 경찰관은 △민사 고의·중과실 사건 △구상권 관련 △형사 과실범의 경우(자격정지 미만 판결) △형사합의금 등에서 경찰법률보험을 이용할 수 있다.

변호사 선임비용과 손해배상금 등 1인당 보장금액은 3000만원이며, 연간 지원건수는 3회 보장된다. 형사심급별 보장 한도는 750만원이다. 퇴직 이후라도 사건 발생 당시 사건으로 피소됐다면 지원받을 수 있다.

경찰법률보험은 기존 제도들이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제한했던 보상 대상을 ‘경찰관 등이 공무수행과 관련’으로 확대했다.

김창기 경찰청 법률지원계장은 "현장 경찰들이 당당하게 집무집행을 해야 하는데 민원과 피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무집행을 하지 못해선 안되지 않느냐는 문제의식에 경찰법률보험을 도입하게 됐다"면서 "일선에서도 안심하고 당당하게 업무를 볼 수 있게 됐다는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