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짜리 국가' 아니다…제대로 된 '비용추계'로 급해도 돌아가야"

머니투데이 권혜민 기자 2021.03.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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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외상 입법']⑤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류철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인터뷰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류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왼쪽부터)/사진제공=하연섭 교수, 류철 교수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류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왼쪽부터)/사진제공=하연섭 교수, 류철 교수


"대한민국은 1년만 살고 끝나는 나라가 아니다. 재정건전성을 고려하면 '비용추계'를 통해 아무리 급해도 돌아가야 한다."

한국에서 재정소요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73년이다. 당시 개정된 국회법은 재정소요법안에 대한 '예산명세서' 첨부 의무를 규정했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2003년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가 신설되고, 2015년 재정 수반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서 제출을 의무화한 국회법이 시행되면서 비용추계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 과정에서 비용추계는 여전히 뒷전이다. 여론이 주목하는 법안을 빠르게 발의해 이슈 선점을 원하는 의원들에겐 비용추계는 법안 발의를 위해 거쳐야 할 '절차'에 불과하다. 재정전문가들은 이같은 국회의 행태에 경고의 목소리를 낸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와 류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1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재정 팽창을 막기 위해 도입한 비용추계 제도가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두 교수는 최근 예정처가 발주한 '비용추계서의 활용도 제고방안' 연구 용역을 함께 수행했다.



이들은 비용추계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으로 의원들의 '입법경쟁'을 꼽았다. 하 교수는 "의원들이 성과를 의식하다보니 비용추계요구서만 붙여 경쟁적으로 법안을 발의한다"며 "유사한 법안들을 상임위에서 통합 심사하는 과정에서 비용추계를 할 여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도 "의원들 입장에선 입법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비용추계서까지 붙이기에는 시간이 걸리니 요구서만 제출하는 것"이라며 "비용추계에 대해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용추계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선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먼저 비용추계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미첨부사유서' 제출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회 규칙 192호 '의안의 비용추계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의안의 내용이 선언적·권고적인 형식으로 규정되는 등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에는 비용추계서를 첨부하지 않고 사유서만 제출해도 된다. 해당 요건이 너무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어 많은 법안들에 대한 비용추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이를 더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류 교수는 "미첨부사유서는 결국 비용추계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데,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데도 빠지는 법안이 많다"며 "실질적으로 비용추계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모든 법안 발의시 비용추계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법안을 낼 때부터 비용추계요구서가 아니라 완성된 비용추계서를 첨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 교수는 "지금은 상임위에서 의결하면 비용추계서 제출을 생략할 수 있는데, 강제성을 더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의원들의 전향적인 자세도 촉구했다. 하 교수는 "큰 틀에서 비용추계가 필요하고 재정건전성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의원들도 모두 동의한다"며 "국회법 개정 사안인 만큼 의원들이 스스로를 구속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보다 근본적으로는 예산 심의 제도의 구조적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재정적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미국식 비용추계 제도를 국내에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하향식(Top down)' 예산심의 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 교수는 "미국 의회는 예산위원회에서 내년도 편성 예산에 대한 총지출한도를 정하고, 법안 심사시 이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법안 비용이 너무 과대하면 우선순위가 낮은 다른 법안이 죽어버리는 만큼 비용추계를 엄격히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지출한도를 정하지 않고 상향식으로 예산이 결정되기 때문에 비용추계가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며 "선진국처럼 지금부터 '하향식'으로 예산심의 방식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재정건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류 교수 역시 "미국에서 비용추계가 중요한 이유는 법안 심사 과정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지 않고 제도를 일부 수정하는 선에선 비용추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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