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대신 중국산배터리, 폭스바겐의 변심 왜?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우경희 기자 2021.03.15 17:14
글자크기
폭스바겐이 중국산 배터리로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한데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거라는 전망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를 잡겠다'는 내부 목표를 세운 폭스바겐으로서는 중국 시장을 빠르게 점유해가고 있는 테슬라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 꼭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폭스바겐 "韓 주도 파우치형 줄이고 각형으로 간다"
폭스바겐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념도/사진=폭스바겐폭스바겐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념도/사진=폭스바겐


폭스바겐은 15일(한국시간 15일 오후 9시) 예정된 '파워데이' 행사에서 "각형 배터리를 미래 통합 배터리셀(Unified sell)로 결정했다"고 글로벌 시장에 공식 발표한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에도 앞서 이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바겐의 선언은 그간 주력이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중국 CATL과 자체 투자 기업인 노쓰볼트의 각형 배터리 탑재를 늘리겠다는 의미다.

전기차용 시장은 셋으로 나뉘어 있다. 사각형의 단단한 틀로 구성된 각형과 원통형 틀로 구성된 원형, 납작한 주머니 형태로 된 파우치형 등이다. 각형은 배터리를 쌓았을 때 버리는 공간이 원통형에 비해 적다. 내구력도 강하다. 다만 무겁고 대형화가 어렵다.



이름 그대로 주머니 형태인 파우치형은 각형과 원통형 배터리의 대안으로 각광받아 왔다.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고 쌓았을때 공간도 가장 적게 차지한다. 다만 상대적으로 배터리 내부의 안정성이 약하다거나 배터리 자체의 내구력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파우치형의 약진에도 각형이 여전히 주력이다. 15일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탑재량은 파우치형이 40.0GWh로 크게 늘어나며 점유율 27.8%를 기록했다. 원통형은 27.1%에서 23.0%로, 각형은 56.8%에서 49.2%로 줄었다.

각형의 점유율이 여전한건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의 주력이 각형이기 때문이다. CATL은 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점유율이 22.8%에 달했다. 역시 각형이 주력인 삼성SDI의 점유율은 7.8%였다. 파우치형과 원통을 동시에 만드는 LG에너지솔루션은 23.9%, 파우치형만 만드는 SK이노베이션은 4.5%다.


CATL이 주도하고 한국3사가 뒤를 따르는 구도가 각형, 파우치형, 원통형 배터리 점유율 구도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의미다.

폭스바겐, 왜 中을 선택했나
2020년 베이징 모터쇼 /사진=김명룡2020년 베이징 모터쇼 /사진=김명룡
배터리 시장 구도가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스바겐이 그간 중국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폭스바겐은 중국시장 개방 후 처음으로 진출한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다. 중국 내 브랜드들이 약진한 후에는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해 지난해 기준 중국 내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중국과 유럽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판매는 테슬라에 뒤진다. 게다가 테슬라는 올해 상하이공장에서 55만대를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테슬라 글로벌 전체 판매량(44만2334대)보다 많다. 폭스바겐으로서는 중국 시장 사수를 위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질 수밖에 없다. 폭스바겐의 각형배터리 선언은 CATL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입맛에 딱 맞는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은 공교로웠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전의 결과로 폭스바겐 미국공장에 배터리 납품이 예정돼있는 조지아주 배터리 생산공장을 2년여밖에 가동할 수 없게 됐다. 폭스바겐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폭스바겐은 국내 3사에 각형 배터리로 전환을 통보한 후 한 배터리사의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는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선 폭스바겐 내부의 반 LG·SK 기류가 상당히 오랜기간에 걸쳐 조성돼 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K·배터리엔 악재, 삼성SDI는 수혜?
LG·SK 대신 중국산배터리, 폭스바겐의 변심 왜?
그간 파우치형 배터리 채용이 늘어남에 따라 과실도 고스란히 국내 기업에 돌아갔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의 전기차용 배터리 탑재량은 33.5GWh로 전년 대비 171.5% 늘었고 SK이노베이션은 7.7GWh로 274.2%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 르노, 현대차, 기아, 폭스바겐, 테슬라 등이 주요 고객이다. 지난해 배터리 생산량 120GWh 중 100GWh가 파우치형이었다. 테슬라와 협업을 위해 원통형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고객인 폭스바겐의 중장기적 이탈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파우치형만 생산하는 SK이노베이션은 충격이 더 클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 매출처 중 상위 2~3위를 다투는게 폭스바겐이다.

상대적으로 국내서 유일하게 각형 배터리를 만드는 삼성SDI가 반사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삼성SDI는 현재 폭스바겐에도 일부 물량을 납품중이다. 배터리 수급문제가 있었던 아우디 이트론 등이 대표적인 삼성SDI 배터리 탑재 제품이다.

이미 BMW·벤츠 납품 일정이 빠듯한 점을 감안하면 곧바로 수혜를 입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폭스바겐이 CATL과 함께 삼성SDI 배터리를 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절대 단일 벤더(공급자) 체제로는 가지 않는 전기차업계 특성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BMW와 오랜 기간 협력을 이어오는 등 각형 배터리 업력과 영향력이 분명 있다"며 "만약 폭스바겐이 삼성SDI 물량을 늘린다면 LG와 SK 양쪽에 경고를 주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