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가만있는데, 신흥국들 울며 '금리인상' 카드 만지는 이유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1.03.16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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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사진=AFP


글로벌 국채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로 신흥국들이 '울며 겨자먹기식' 금리 인상에 나설 태세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부채가 급증하고 경제 회복세도 여전히 불완전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신흥국 경제를 둘러싼 우려가 커진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브라질 중앙은행은 오는 1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로 0.5%포인트(p)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리라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지난해 이미 금리 인상을 시작한 터키 중앙은행은 18일 통화정책회의에서 1%p 추가 인상이 거론된다. 러시아는 19일 회의에서 긴축이 임박했음을 시사할 가능성이 있다. 나이지리아와 아르헨티나는 이르면 올해 2분기에 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인도,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도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신흥국들이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서는 배경에는 미국을 주도로 한 글로벌 경제 낙관론이 있다. 선진국 채권금리가 오르면서 신흥국 자본 유출 우려를 키우고 통화 가치를 짓누르고 있어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0개 신흥국 주식과 채권에서 하루 평균 약 2억9000만달러(3300억원) 규모의 자본이 빠져나갔다. 주간 기준 신흥국에서 자본이 이탈한 건 10월 이후 처음이다. 브라질은 코로나19 확산과 정치 혼란까지 겹치면서 헤알화 가치가 올해 들어 달러 대비 10% 미끄러졌다. 또 식량에서 원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은 신흥국 물가상승률을 위협하고 있다. 브라질의 2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5.2%로 4년 만의 최고를 찍었다.

카르멘 레인허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인터뷰에서 "식량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은 각국에 서로 다른 충격을 가하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에 중요한 문제"라면서 "앞으로 신흥국들은 환율 안정과 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잇따라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신흥국들의 금리 인상은 아직 정상 궤도를 찾지 못한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뿌릴 수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지아드 다우드 신흥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 중앙은행의 기류가 바뀌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 시점이다. 아직 대부분의 신흥국이 완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신흥국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다. 금리가 인상되면 상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신흥국들의 미상환 부채는 지난해에만 국내총생산(GDP) 합계액의 250%까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특히 중국, 터키, 한국,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부채 증가세가 가팔랐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부채 부담이 줄어들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각국 정부에 섣부르게 재정 부양책을 중단하지 말 것을 거듭 당부하고 있다.

경기 회복 속도를 가를 코로나 백신 보급이 신흥국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씨티그룹은 올해 신흥국들의 집단면역 달성 시기는 올해 3분기 말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가 될 것으로 봤다. 연내 집단면역 달성이 기대되는 선진국에 비해 늦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언제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미국의 긴축 전환은 일부 신흥국에 2013년 테이퍼텐트럼(긴축발작)에 견줄 만한 충격을 던질 수 있어서다. 당시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소식에 신흥국 자산이 크게 흔들렸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리와 코어 인플레이션 상승 전망을 고려해 우리는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금리 정상화 시기를 종전 2022년 말~2023년 초에서 2022년으로 앞당긴다"면서 "연준의 경우 올해 유동성 축소 움직임이 내년 금리 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아시아 신흥국들은 지난해 외환보유액이 8년 만에 최대로 증가해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잘 견딜 수 있는 상황이지만 브라질, 남아공, 터키, 케냐, 튀지니 등은 훨씬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르지 라나우 이코노미스트는 지난주 보고서에서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의 재정 여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고속 성장하는 아시아 신흥국만이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부채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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