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추계 생각 않고…"이슈 터졌다고 다음날 법안 낸다"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21.03.1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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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외상 입법’]④

비용추계 생각 않고…"이슈 터졌다고 다음날 법안 낸다"


“단순히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정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검토하는 진정성이 필요하다” - 국회 관계자 A씨



“최근 입법건수 자체가 급증한다. 입법 성과에 쫓겨 건수나 속도 중심으로 법안에 접근하는 폐해가 발생한다.” - 국회 관계자 B씨

이른바 ‘외상 입법’ 현상으로 행정 과부하를 호소하는 국회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국민 혈세 투입이 불가피함에도 비용에 대한 고민 없이 여야가 쏟아내는 법안들에 고개를 숙인다.



입법에 구슬땀을 흘리는 보좌진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 단위 이슈가 터질 때마다 대응하기 위해 비용추계 없이 단기간 입법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개략적 방향성이나 구체적 가정 없이 어떻게 추계하나"
1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 취재 결과, 국회 관계자들은 급증하는 ‘외상 입법’으로 각 법안에 대한 면밀한 비용추계 등을 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입을 모았다.

(관련기사☞ [단독]'비용추계' 없이 법만 낸다…올해 '외상입법' 93.6%, 해마다 '급증')


통상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기 전 국회에 비용추계를 요구하거나 발의와 함께 비용추계요구서를 제출하면 국회 예산정책처가 해당 업무를 담당한다. 법안 완성도에 따라 추계에 최대 수주가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용추계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의안의 비용추계 등에 관한 규칙 3조3항에 해당하는 경우다. 의안 내용이 선언적·권고적 형식으로 규정되는 등 기술적으로 추계가 어려운 경우로 예정처는 추계 업무를 멈추고 미첨부사유서를 낸다.

해당 법안이 비용추계 대상인지 확인 없이 법안이 제출되기도 한다. 이 경우 의안과는 비용추계요구서를 첨부하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한다.

국회 관계자 C씨는 “예산정책처가 전문기관이나 정책에 대한 개략적인 방향성이나 구체적인 가정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계하도록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과도한 요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긴급한 상황에서 다양한 입법 의견들이 있는 경우 반드시 예산 소요가 사전에 추계돼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어느 시점에는 재정 규모가 구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달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정세균 국무총리가 이달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자성 목소리도 "어떤 사태 터졌다고 오늘, 내일 법안 낸다"

비용추계요구서 제도가 남용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회법에 따라 여야 의원들은 사전 비용추계 작업을 거치지 않고 비용추계요구서를 첨부하는 방식으로 법안 발의의 형식 요건을 갖출 수 있다.

국회 관계자는 D씨는 “비용추계요구서 제도가 편리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며 “너무 남용되면 입법 전 정책의 구체성을 고민하라는 비용추계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야의 입법 경쟁에 속도 조절을 당부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관계자 E씨는 “입법 발의 단계에서 충분한 검토가 어려운 경우, 위원회 단계라도 재정 지출 등이 중요한 법안은 검토에 필요한 시간을 검토하고 적절한 논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도 비용추계 제도 취지를 복원하고 완성도 있는 입법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 소속 비서관 E씨는 “과도한 비용추계 요구가 입법권 침해로 볼 수 있으나 국민들 입장에선 분노할만한 지점”이라며 “수조원의 비용이 투입되는 법안인데 비용추계 없이 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보좌관 F씨는 “상황에 맞춰 법안을 발의한다는 것 자체가 비용에 대한 기본적인 고려를 하지 않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어떤 사태가 터졌다고 오늘, 내일 법안을 내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자기 홍보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교적 정확한 비용추계를 거치고 법안 내용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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