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올해는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시장 안팎의 진단이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 ‘전국민 주식 열풍’ 속 개인 소액주주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부상했다.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만 신경쓰면 됐던 시기가 아니다. 주총 거수기라는 오명을 받았던 국민연금을 비롯 국내외 주요 기관투자자들도 이제는 의결권 행사를 두고 적극적으로 고민한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정기주총의 특징을 압축하는 3대 키워드로 ‘W·O·W (WAR·ONLINE·WOMEN)’를 꼽는다. WAR(의결권 전쟁), ONLINE(온라인 주총), WOMEN(여성 임원)이다.
의결권은 어느 주총에서나 중요하지만 특히 올해는 경영권 분쟁을 겪는 기업들이 많아 전쟁 이상의 체감도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시장을 달궜던 한진그룹들과 사모펀드 KCGI의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조카의 난’이라 불리는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회사 노조에 이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도 오너인 박찬구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카인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다소 밀리는 모양새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결과는 오는 26일 주주총회 결과로 판가름난다.
30일 열릴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지주사) 주총에선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선임을 놓고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사장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부회장 형제 간 표대결이 예상된다.
GC녹십자를 공동 경영하고 있는 허일섭 녹십자홀딩스 회장 측과 조카인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사장도 전운이 감돈다는 관측이다. 두 사람 모두 올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재선임을 논의하는 녹십자홀딩스 주주총회(25일)가 주목된다.
온라인 주총은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비대면 행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나왔는데 코로나19 이후 국면에서도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 온라인 회의 등 비대면 문화가 정착했고 지난해 증시 급등으로 개인 투자자 숫자도 폭증했다”며 “오프라인 현장 주주총회에서 이를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포스코는 처음으로 정기주총을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했다. 참석하지 못하는 주주들은 온라인으로 현장을 참관했고 의결권 행사는 사전에 접수한 전자투표를 통해 이뤄졌다. 삼성전자도 올해 처음 온라인 정기주총 생중계 방식을 도입한다. 2018년 초 액면분할로 개인주주 숫자가 크게 늘어난 터라 온라인 주총이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했다.
SK텔레콤, 현대차, 카카오 등도 온·오프라인 주총을 병행할 예정이다.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기업도 크게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3월 14~20일) 예탁원 전자투표시스템을 통해 전자투표·전자위임장을 이용하는 상장법인은 총 376곳이다.
올해 주총 키워드에 WOMEN(여성임원) 꼽힌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내년 8월 시행될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기업은 이사진에 여성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법이 아니어도 최근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고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때문에 상장사 주총 안건을 보면 사외이사에 여성을 발탁하려는 사례가 많다. 한 상장사 인사 담당자는 “여성인재를 내부승진시키는 것이 바람직 하지만, 업무적 특성과 육아·출산 때문에 여자 부장도 없는 상태”라며 “이번 주총에서 외부인재로 여성 사외이사를 먼저 선임한 후 내부발탁을 순차적으로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나 감사를 추가선임하거나 임기연장, 후임을 뽑으려는 기업은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삼성생명, 한화, DB손해보험, 금호석유화학, GS건설, 현대건설 , SK, SKC, 포스코케미칼, LG, LG유플러스, 삼양식품 등이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200대 상장사의 여성 등기임원은 65명으로 전체 임원의 4.5%에 그쳤다. 올해 3월 주총을 거치면 새로 명함을 받는 여성임원 숫자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