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사 ISS는 '절대善'이 아니다[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3.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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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주주총회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삼성전자의 기관 투자자인 국민연금에게 이 회사의 사외이사 3인의 연임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권고했다. 이제 오는 17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이를 수용할지가 최대 화두가 됐다.



주총에 앞서 국민연금 측에 제안한다면 ISS의 이런 의견은 여러 의견 중 하나로 참고할 뿐 여기에 절대적으로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국민연금이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ISS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내린 후 여러 정치적 고초를 겪었던 트라우마로 인해 ISS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같은 사안에 대해 글로벌 넘버2 의결권 자문회사인 글래스루이스(GL)가 ISS와 반대로 사외이사 연임에 찬성입장을 낸 것 때문에 하는 얘기도 아니다.

이보다는 의결권 자문회사의 역량과 신뢰성에 비해 그들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해진 문제 때문이다. 이들의 독과점의 문제, 이익상충의 문제, 의결권 자문보고서의 부정확성에 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학계와 재계에 제기돼 왔다.

전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세계 1위 ISS와 2위 GL이라는 사기업이 전세계 주주총회에서의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에 비해 분석의 치밀성이나 그 분석에 대한 책임성 부족은 계속 지적돼 온 문제의 핵심이다.


이번 3명의 삼성전자 사외이사 반대의견도 마찬가지다. 이달 22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김종훈 사외이사(키스위모바일 회장)·박병국 사외이사(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재선임 안건과 김선욱 사외이사(이화여대 전 총장)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의 반대이유도 부실해 보인다.

알려진 바로는 해당 사외이사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수사·재판 기간에 선임돼 활동하면서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연임 반대 권고 이유로 알려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ISS가 맥을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다. 국정농단 사건과는 관련이 없었던 사외이사들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도 문제지만, 실제 이사회에서의 어떤 활동이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사안인지 도무지 추정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선임된 2018년 3월 이후 8차례 이사회 27건의 안건과, 2019년 7차례 31건의 안건, 2020년 10차에 걸친 33건 등 총 91건의 이사회 안건을 아무리 뒤져봐도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부분을 찾기 쉽지 않다.

이들 이사회 안건의 대부분은 준법경영과 주주총회 관련, 기부의 건, 투자의 건 등이다. 지난해엔 특히 코로나19 관련 긴급 구호 지원과 사회공헌 기부금건, 준법감시위원회 안건이 많았다. 지난해말에는 삼성꿈장학재단기부건, 전자투표제 도입건, 준법지원인 선임 건, 희망2021 나눔캠페인 기부건, 삼성글로벌 골(Goals) 기부건 등이 주를 이뤘다. 경영진에 대한 견제 감시 수행 미숙을 판단할 수 있는 이사회 안건은 거의 없었다.

최문희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6년 서울대 '법학'에 기고한 '의결권 자문회사에 관한 입법 과제와 법적 쟁점'이라는 논문에서 ISS 보고서의 부실함을 언급한 대목이 눈에 띄는 이유다.

최 교수는 자신이 입수한 ISS 보고서의 부실문제를 지적하면서 "(주총 의결권 자문)안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개별 안건에 대한 분석은 한 페이지를 초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선임반대 안건에 대한 ISS 보고서와 관련해서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지적이다.

보고서의 부실문제와는 별개로 ISS 자체의 지배구조에 따른 기준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대주주가 펀드였던 ISS는 지난해말 대주주가 독일 거래소로 바뀌었고, 올해 중반 최종 인수합병 승인이 완료될 예정이다. 펀드가 대주주일 때는 이해상충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고, 주주가 미국에서 독일로 바뀐 후에는 국가간의 법률적 특성 차이에 따른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ISS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을 때는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법과 다른 내용의 법제 적용을 강요한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11월 ISS가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운영사인 도이체 뵈르제에 매각되면서 이제는 유럽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삼성전자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다른 그 어떤 기업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2019년말 기준 국민연금이 투자한 1093개 회사 중 삼성전자에만 총 35조 3767억원을 투입해 국민연금 주식운용 자산의 27.1%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우리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커 일부 의결권 자문회사의 의견을 단순히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 종합적이고 사회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듣되, 문제가 없는 한 그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의결권 자문회사는 권고 결정에 대한 손해 발행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이 주주와 다른 점인 의결권 자문회사의 한계다. ISS 등이 기업들의 지배구조 등을 감시, 관리한다고 하지만 사실 전세계 주총을 좌우할 정도로 이렇게 덩치가 커진 이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감시와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ISS와 GL이 사외이사 선임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만 봐도 정답은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SS가 절대선이 아닌 만큼 결정은 오롯이 국민연금 스스로가 하되, 최고의 조언자는 그 회사를 잘 아는 경영자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사진=임성균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사진=임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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