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든 아니든 중대결정' SK이노 이사회도 움직인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1.03.1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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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전 국회의원)2020.11.5/뉴스1(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전 국회의원)2020.11.5/뉴스1


배터리분쟁서 패소한 SK이노베이션이 중대결정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합의든 아니든 사업상 엄청난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회사 최고 결정기구인 이사회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SK이노베이션은 11일 전날 열린 이사회 확대감사위원회 회의 결과를 공개했다. 이사회는 글로벌 분쟁 경험 부족으로 미국 사법절차에 미흡하게 대처한 점에 대해 회사를 강하게 질책했다. 또 양사 합의에 있어 사업 경쟁력을 현격히 낮추는 수준의 요구는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입장을 내고 재차 합의를 압박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 못하는 인식 차이가 아쉽다"며 "(침해) 인정이 합의의 시작일 것이며, 현금·로열티·지분 등 주주들이 수긍할 수 있는 다양한 보상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 이사회 "터무니없는 합의는 없다"
이사회는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오너CEO(최고경영자)라 해도 이사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본인부터 2019년 지주사 SK(주) 이사회 의장직을 놓고 이사회-경영을 분리했다.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이끈 김종훈 전 국회의원이다.



이사회는 회의서 LG에너지솔루션에 새로 제시한 협상조건과 이에 대한 LG 측 반응 등 협상 경과를 보고받았다. 보고 내용을 검토한 이사회는 "회사(SK이노베이션)가 무리하게 합의하려 할 경우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합의안에 대한 별도의 검토를 하겠다는 의미다.

SK이노베이션은 ITC로부터 영업비밀 침해가 인정됨에 따라 최대 10년 간 미국 내 배터리 수입 금지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특히 ITC는 소송전 초기에 이뤄진 SK이노베이션 측의 문서 삭제 행위에 대해 "노골적 악의 하에 이뤄진 은폐 시도"라고 지적했다.

ITC 판결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60일 이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 시한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관련업계는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높지 않게 본다. 시한이 지나고 나면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중대결정을 해야 한다.


이사회가 나섰다…사업적 결정 수순 돌입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제1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사진제공=SK이노베이션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제1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이사회는 "소송 과정에서 문서를 삭제하면서, 영업비밀 침해는 다퉈보지도 못하고 수입 금지 조치를 받았다"고 회사를 강하게 질책했다. 최우석 대표감사위원(고려대 교수)도 "소송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방어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패소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소송 패소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에 짓고 있는 배터리 생산기지의 정상 가동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LG엔솔과 합의를 통해 사업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비공식 접촉을 통해 확인한 양 측 합의금 규모의 간극이 매우 큰 것으로 전해졌다.

현실적으로 합의든 미국사업 포기든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엄청난 사업적 결정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점에 이사회가 직접 나섰다. SK그룹이 중대결정 과정에 들어갔다는 의미다.

이사회는 합의 규모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소송 과정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사회 차원에서 소송전 전말이 다시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다른 차원의 정책적 접근도 이뤄질 수 있다. 그룹 내에서 빠른 합의를 종용하는 목소리도 일단은 잦아들 전망이다.



LG엔솔 "인정이 합의의 시작...다양한 보상방법 가능"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 이사회 논의 내용 공개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 차이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보상 방안에 대해서는 "현금이나 로열티, 지분 등 다양한 보상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입장문을 낸 LG에너지솔루션은 "공신력 있는 미 ITC(국제무역위원회)에서 배터리 전 영역에 걸쳐 영업비밀을 통째로 훔쳐간 것이 확실하다고 최종결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식의 차이가 아쉽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를 인멸·삭제·은폐한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인정하는 것이 합의의 시작일 것"이라며 "미국 연방영업비밀보호법에 근거한 당사 제안을 가해자가 '무리한 요구라 수용불가'라고 언급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며, 문제해결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경쟁사가 진정성 있게 협상 테이블에 와서 논의할 만한 제안을 하고 협의를 한다면 최근 보톡스 합의사례와 같이 현금, 로열티, 지분 등 주주와 투자자들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다양한 보상방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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