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 김선욱 전 이화여대 총장, 박병국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머니투데이 포토DB
개정 상법 규정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안건 반대 권고가 맞물리면서 삼성전자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이 정기주주총회에서 부결되는 초유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재계 한 인사는 "가·부결 여부를 제쳐두더라도 ISS가 꼽은 반대 권고 사유부터 삼성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라며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하고 준법감시위원회까지 신설하면서 준법의지를 밝힌 상황에서 세계적인 자문사의 이런 의견에 삼성 내부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총에서 사외이사 재선임 및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김선욱 사외이사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의 경우 올해 주총부터 적용되는 개정 상법과 맞물려 삼성전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정 전 상법에서는 사외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고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는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되지 않아 감사위원 안건을 처리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하지만 개정 상법은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 선임 때부터 별도로 분리해 선임하고 이사로 선임할 때부터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각각 최대 3%까지만 허용한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이 개정 상법에 따라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서는 각각 3%로 줄어들게 된다. 영향력이 큰 ISS의 반대 권고와 맞물려 부결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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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삼성전자 주총에서 사내·외이사나 감사위원 안건이 부결된 적은 아직 없다. 2018년 주총에서 삼성전자 CFO(최고재무책임자) 출신의 이상훈 전 이사회 의장 선임 안건이 61.6%이 찬성률로 통과된 게 역대 최저 찬성률이다. 당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다.
2019년 주총에서는 현재 이사회 의장인 박재완 당시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한 찬성률이 71.4%에 그쳤다. 캐나다의 국민연금 격인 캐나다연기금투자위원회(CPPIB)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투자공사(BCI),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 플로리다연금 등 4곳의 해외 연기금이 반대 의사를 표했다.
예상 밖 반대 권고 '당혹'…국민연금·외국인 의결권 향방에 '촉각'
. / 사진제공=삼성
삼성전자 주주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주주와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의 표심이 관건이다. ISS는 외국인 주주와 국내외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문사다. 국민연금도 이들의 자문 서비스를 받는다.
특히 공적 연기금은 투자수익률 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준법 의지 등 공공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에 민감하다. 의결권 자문사의 의견이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감한 안건일수록 연기금이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를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ISS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총 당시에도 합병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ISS의 반대 권고에도 불구하고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이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이 사건은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자문기구 성격이었던 기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로 확대, 개편한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수탁자책임 전문위가 기금운용본부에서 요청한 사안을 심사하는 수준을 넘어 자체적으로 판단해 특정기업에 대한 의결권 심사를 요구,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것도 이 사건 이후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심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전문위를 열어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