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회사가 시총 69조? 쿠팡 상장에 '멘붕' 빠진 IB업계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2021.03.12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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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 사진제공=뉴스1쿠팡 / 사진제공=뉴스1


"PEF들은 쿠팡 가치를 이해하기 힘들죠. 그렇지만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1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는 쿠팡의 기업가치가 69조원으로 추산되면서 IB업계는 이른바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쿠팡은 '만년 적자'인 탓에 현금 창출력을 우선시하는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들의 관심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번에 소프트뱅크가 쿠팡 투자로 '잭팟'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쿠팡을 계기로 성장기업에 대한 비중을 늘릴지 고민이 깊어진다.



10일(현지시간) 미국증권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쿠팡의 공모가는 35달러로 확정됐다. 상장 규모는 1억3000만주 45억5000만달러(5조2000억원)로 지난 2014년 알리바바(250억달러 공모)에 이어 최대 규모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아시아 기업 중에는 4번째로 큰 규모다. 기업가치는 600억달러(69조원)를 인정받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보유한 쿠팡 지분(33.1%) 가치도 약 199억달러(한화 22조6694억원)가 된다. 소프트뱅크 투자금이 30억달러(3조4200억)였단 점에서 투자금의 6배 넘는 수익을 올린 셈이다.



쿠팡 '잭팟'을 바라보는 PEF 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PEF 업계는 성장 단계에 있는 혁신기업들에 과감히 투자하는 VC(벤처캐피탈)과 달리, 일정 규모의 현금창출력이 있는 안정적인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왔다.

펀드 규모가 VC보다 크기 때문에 잘못 투자할 경우 이력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수 있고, 바이아웃(buy-out, 경영권 매입) 전략전략을 많이 쓰는 특성상 적자 기업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이에 기업 인수나, 투자시 수익성을 나타내는 EV/EBITDA(세전영업이익) 지표를 가장 중시해왔다.

반면 쿠팡은 수익성 지표 대신 P/GMV(PER/거래금액규모)나 PSR(주가매출비율, 주가/주당매출) 등의 거래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를 앞세워 기업가치를 측정받았다. 2010년 설립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년 적자기업은 PEF들의 기존 잣대로는 투자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뉴욕 증시에서 엄청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테헤란로 / 사진=류승희 기자 grsh15@테헤란로 / 사진=류승희 기자 grsh15@
쿠팡 사례를 굳이 꼽지 않더라도 최근 4차 산업혁명 하에서 PE업계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과거 성장기업으로만 치부했던 이들이 순식간에 실적이 우상향해 알짜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성공적으로 딜이 마무리된 '잡코리아'나, 숙박업소 플랫폼인 '여기어때', '야놀자'가 대표적 사례다.



이에 PEF들도 최근 2차전지, 친환경 등 특정 섹터 전문가를 영입하고, 펀드 자금의 일부를 30대 젊은 층에게 온전히 운용을 맡기는 등 전략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한 PEF 대표는 "쿠팡 가치에 PDR(주가꿈비율)이 들어있고 상장 초반 가치가 오버슈팅된 것은 맞는 것 같다"면서도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기존 가치 평가법으로는 플랫폼 등 혁신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어려워 아예 신성장 기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 40대 이하 젊은 직원들에게 펀드의 5~10% 운용을 맡기려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PEF 대표 역시 "성장기업들이 가치 평가를 잘 받는 것을 보면 LP들도 압박을 하고 우리도 고민과 부담, 부러움을 느낀다"며 "일부 GP들이 마이너리티(소수지분) 투자 등으로 혁신기업에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아웃 전략을 쓰는 PEF들의 경우 펀드 만기가 10년인만큼 당장의 트렌드보다 기업 영속성, 안정성을 따져 이들에 대한 투자가 대세로 굳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봤다.

업계 관계자는 "요새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변화들이 산업 각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VC들처럼 우리도 섹터 전문가를 뽑아 신성장 분야에 대한 리서치 등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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