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 투입 드라마 급한불과 함께 관심도 꺼트리나?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3.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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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뜨강' 나인우, 좌초위기 드라마 살리며 반전드라마 쓸까?

'날아라 개천용'에 배성우 대신 대타투입된 정우성. 사진제공=SBS'날아라 개천용'에 배성우 대신 대타투입된 정우성. 사진제공=SBS


프로야구에서, 대타(代打)가 나와 안타를 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10번의 타석 중 3개의 안타, 3할을 치
면 좋은 타자로 분류되는 것을 고려할 때 대타의 성적은 이를 밑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타를 내세우는 이유는 특정 투수를 상대를 상대로 유독 좋은 성적을 내는 상성(相性)을 따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가의 대타는 성격이 다르다. 갑작스럽게 배역을 다른 배우에게 맡기는 건, 십중팔구 부정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명도 높은 배우들은 당연히 그 자리를 피하니 상성을 따지며 대체 배우를 찾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토록 피하고 싶은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배우 지수가 학교 폭력(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데 이어 이를 인정한 후 현재 방송 중인 KBS 2TV 월화극 ‘달이 뜨는 강’에서 중도하차했다. 얼마 전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활동이 중단된 배우 배성우를 대신해 정우성이 SBS ‘날아라 개천용’에 중간 투입된 데 이어 올해만 두 번째다. 과연 대타를 낸 ‘달이 뜨는 강’의 성적은 어떻게 될까?

#‘달이 뜬 강’…‘급한 불’ 껐다

지수를 대신하게 된 나인우가 연기하는 온달은 8일 방송된 ‘달이 뜨는 강’ 7회에 처음 모습을 보였다. 당초 그는 오는 9회부터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지수를 둘러싼 대중의 반감이 워낙 컸던 터라 기존 촬영 분량까지 폐기하고 나인우의 투입 시기를 앞당겼다. 그는 지난 5일 제작진과 첫 만남을 가진 후 다음 날 바로 촬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달이 뜨는 강’에서 지수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로 결정한 제작진은 곧바로 편집을 시작해 나인우가 연기하는 온달로 ‘급한 불’을 껐다.

나인우가 등장한 ‘달이 뜨는 강’ 7회는 전국 시청률 8.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직전 회차에 비해 0.5%포인트 하락했으나 우려했던 폭락은 없었다. 제작진이 슬기롭게 대처하며 위기를 잘 넘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인우, 사진출처=스타뉴스DB나인우, 사진출처=스타뉴스DB

물론 시청률 추이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수의 등장 장면을 재촬영해야 하는 만큼 제작 일정도 빡빡해져 작품의 퀄리티가 다소 떨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수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이 의기투합하고 있는 상황이 전해지며 시청자들의 격려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지수와 함께 촬영을 마쳤던 배우들은 다시금 나인우와 함께 같은 장면을 다시 촬영했다. 이 과정에서 왕빛나, 이지훈, 기은세, 김희정 등이 출연료를 추가로 받지 않고 ‘노 개런티’로 촬영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은 이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드라마 출연 배우와 제작진들이 힘을 모은 사례를 ‘날아라 개천용’을 통해 본 적이 있다. ‘날아라 개천용’은 지난해 말 배성우가 음주운전에 적발되며 난관에 빠졌다. 연말연시 특집 프로그램이 많이 배치되는 것을 고려해 3주 간의 재정비 기간을 거친 제작진은 배성우의 역할을 정우성이 맡으며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정우성은 배성우가 속한 아티스티컴퍼니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책임지는 차원에서 톱스타 임에도 이례적으로 직접 나섰다.

물론 이는 ‘날아라 개천용’의 홍보 효과를 가져왔다. 당초 이정재로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가 정우성으로 확정되는 과정은 낱낱이 보도되며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당시에는 존재하던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단에는 정우성, 배성우, ‘날아라 개천용’이라는 키워드가 연일 도배됐다. 다른 작품 출연 스케줄 때문에 대타를 맡을 수 없었던 이정재는 특별출연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좋은 결과로 귀결된 것은 아니다. 방송 중반까지 6% 시청률을 유지하던 ‘날아라 개천용’은 대타 투입 후에도 시청률 반등 없이 5%대에 머물렀다. 마지막회는 6.2%로 소폭 상승하며 막을 내렸지만 별다른 반향은 없었다. 배성우가 맡았던 역할이 정의로운 기자였기 때문에 현실 속 그의 모습과는 괴리감이 컸고, 배성우에서 정우성으로 반전되는 외모 역시 드라마 흐름 상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한 드라마 외주 제작사 대표는 "주인공의 중도하차는 불미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시청률 반등을 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큰 하락을 막으며 적절한 선에서 매듭짓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며 "이미 드라마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돼 방송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작비를 모두 돌려줘야 하고, 방송사가 이미 판매한 광고 역시 원점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상황이 된다. 결국 빠른 대처를 통해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달이 뜨는 강', 사진제공=KBS'달이 뜨는 강', 사진제공=KBS

#주인공 중도 하차의 역사

드라마 방송 도중 주인공이 교체되는 것 대단히 이례적이다. 배우가 학폭에 연루돼 활동을 중단하게 된 건 처음이지만, 주인공 교체는 초유의 사태가 아니다. 가장 가까이는 지난 2019년 7월 TV조선 드라마 ‘조선생존기’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당시 이 드라마를 촬영 중이던 강지환이 경기도 자택에서 여성 스태프들을 준강제추행 및 준강간한 혐의로 긴급체포되면서 ‘조선생존기’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아직 강지환의 혐의가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이미지 훼손이 큰 사건이라 드라마가 계속 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결국 서지석이 강지환의 빈자리를 메우며 ‘조선생존기’는 예정된 16부까지 여정을 마쳤다. 하지만 시청률 하락은 면치 못했다. 시청률 1%대를 유지하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 3회가 0.9%에 그쳤다.

주인공 교체 역사의 시작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BS 드라마 ‘순애’의 주인공을 맡았던 원미경이 16회 만에 하차하면서 박준금에게 기회가 갔다. 당시 원미경은 이미 톱스타였고 박준금은 신인이었기에 더욱 파격적인 결정이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2001∼2002년에는 KBS 사극 ‘명성황후’의 주인공이 바뀌는 소동을 겪었다. 이 드라마의 경우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높은 인기가 문제라면 문제였다. 당시 이미연이 타이틀롤을 맡아 큰 화제를 모았으나 이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방송사가 연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겼다. 100부작이었던 이 작품을 더 늘리려고 하니 이미연이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1년 넘게 촬영을 이어가던 이미연은 체력과 차기작 스케줄 등 납득할 만한 이유로 연장에 참여하지 않았고, 결국 KBS는 연장된 30회 분량을 선배 배우인 최명길에게 맡겼다. 하지만 이 역시 "무리한 강행"이라는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고, 이는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2016년에는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에 출연하던 오지은이 촬영 도중 발목을 다쳐 전치 8주 진단을 받아 촬영을 이어갈 수 없었고 결국 임수향으로 대체됐다. 공교롭게도 ‘불어라 미풍아’의 후속작인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섰던 구혜선이 건강 상의 이유로 방송 3주 만에 하차했고 장희진이 공백을 채웠다. 또한 2018년에는 고현정이 SBS ‘리턴’ 촬영 도중 제작진과 불화를 겪으며 7회 만에 하차하고 박진희가 나머지 분량을 책임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는 "한국 방송가에는 사전제작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방송 도중 배우의 얼굴이 바뀌는 부득이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며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공동 작업인 드라마에 참여한 애먼 이들까지 그 피해를 함께 짊어져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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