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사진=뉴스1
대선을 1년 앞두고 사실상 여의도행을 선언하며 직을 내던진 윤 전 총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지만 윤 전 총장은 당분간 이들과 거리를 두며 몸값 높이기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향후 윤 전 총장이 제3지대의 중심에 올라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일단 숨 고르기에 돌입했다. 정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강연 등을 통해 간접적 행보를 걸을 예정이다. 자신만의 메시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정치적 길에 대한 고심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전직 검찰총장이라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발언들은 꾸준히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전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굉장히 정치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에 함부로 들어가기도 위험성이 있고 국민의당을 선택하기에도 기반이 너무 약하다는 어려움을 본인도 알 것"이라며 "자신이 아직 급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면서 지켜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4·7 재보선 결과가 尹 행보 가를 듯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사진=뉴스1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사진=뉴스1
윤 전 총장이 여의도 전면에 등장할 시기는 4·7 재·보궐선거 이후가 될 전망이다. 윤 전 총장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민심을 엿볼 수 있는 척도이자 야권 주요 인사들의 추후 움직임을 가늠해 볼 좋은 기회다.
보궐선거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윤 전 총장은 기존 정당 입당, 제3당 창당 등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야권에서 서울시장 최종 승자가 탄생한다면 대선 야권 구도는 서울시 당선자를 배출한 당을 중심으로 개편될 확률이 높다. 즉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승리한다면 국민의힘의 기세가 올라가 윤 전 총장이 입당 압박을 받는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최종 선택을 받으면 안 후보와 윤 전 총장이 손을 잡고 제3지대 중심의 야권 대선판을 만들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여권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배출되면 상황은 더 유동적으로 흐를 수 있다. 야권 후보가 큰 격차로 여당에 밀리면 야권은 사실상 주도자가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접어든다. 이 경우 윤 총장을 중심으로 야권 새 판이 만들어질 수 있다. 윤 총장이 제3당을 창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야권에서 서울시장을 배출하지 못하더라도 오 후보와 안 후보 간 단일화에서 누가 이기느냐, 최종 후보가 여권에 얼만큼의 차이로 지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며 "최종적으로 야권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더라도 국민의힘이 안 후보를 누른다면 윤 전 총장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 성장의 가능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안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됐는데 아슬아슬하게 여당에게 진 상황이 된다면 윤 총장의 활동 폭은 더 커지게 될 것"이라며 "안 후보와 윤 전 총장을 중심으로 제3지대에서 정치세력 규합이 이뤄질 것이고, 국민의힘은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식으로 빅텐트를 제안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 대선판에서 제3지대란…"실패의 역사" 극복 가능할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코바나컨텐츠를 나와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코바나컨텐츠는 윤 총장 부인 김건희씨가 운영하는 회사다./사진=뉴스1
윤 전 총장이 제3지대로 나설 것이란 전망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합류키 어렵다는 분석에 기초한다. '국정농단' 수사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지지층과 마찰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윤 전 총장이 곧바로 국민의힘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면 총장 시절 행적 등에 대한 공격이 있을 수 있다.
안 후보와 당장 손을 잡기도 부담이 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안 후보와 함께하면 곧바로 하나의 정파가 돼 버린다. 문재인 정권이 헌법을 파괴한다고 지적하며 사표를 낸 만큼 현 정권의 헌법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하려 할 것"며 "지금 국민의당으로 가면 추후 국민의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건지는 계속 정치적 숙제로 남는다"고 했다.
다만 제3당을 창당하는 등 제3지대의 인물로서 대선을 바라보기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한국 대선 역사에서 제3지대 후보자로 승자가 된 이는 아무도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7년 대선에서는 문국현 후보가 있었다. 유한킴벌리 대표 출신인 문 후보는 깨끗한 기업가 이미지를 무기 삼아 대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루지 못하고 창조한국당을 창당해 독자 출마했다. 결국 5.8% 득표에 머무른 뒤 정치권에서 사라졌다.
같은 시기 지금의 윤 전 총장처럼 지지율 30% 웃도는 등장으로 정치권에 충격을 준 이도 있었다. 고건 전 총리다. 당시 중도의 표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력 후보로 평가됐으나 자신만의 정치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다가 지지율이 급하락하자 판을 떠났다. 가까이는 안 후보의 실패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실패도 있다.
이와 관련해 박 평론가는 "우리나라는 헌법 자체가 대통령파와 반대통령파로 나눠져 있는 나라"라며 "대선은 선거 전략 자체가 항상 '정권 심판론' 등 진보와 보수 싸움 프레임으로 짜져 왔고, 여기에 익숙해진 국민들이 이를 주요 판단 기준으로 삼아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허상의 이념 틀을 가지고 '적대적인 공생관계'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진영화된 싸움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제3지대가 설 자리는 거의 없다"며 "윤 전 총장도 현실 정치의 벽을 뛰어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