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샤넬 대기만 200명" 참다 터진 명품 '보복 소비'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2021.03.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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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백신발 분노의 소비" 신세계 강남점 토요일 풍경 명품 매장 '바글바글'

6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샤넬 매장 앞에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서고 있다/사진=오정은 기자6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샤넬 매장 앞에 손님들이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서고 있다/사진=오정은 기자


"앞 쪽 자리 차지하려면 아침 7시 이전에 와야 해요. 8시에 왔는데 60번째쯤이거든요. 줄 서시려면 뒤로 가세요."



지난 6일 토요일 서울 반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후문 명품관 앞에는 오전 9시부터 200여명의 인파가 백화점 오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화점 개점 시간은 10시30분. 샤넬 직원이 10시쯤 와서 샤넬 매장 방문 번호표를 나눠주는데, 이 줄은 샤넬 번호표를 받기 위한 것이다.

새벽부터 와서 기다린 손님들은 3시간 이상 기다릴 것을 각오하고 스타벅스 캠핑 의자, 할리스 캠핑 의자 등 커피전문점에서 증정한 간이의자를 챙겨 왔다. 직장인 A씨는 "샤넬 오픈런(백화점 문 열자마자 매장으로 달려가는 현상)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왔다"며 "아침 9시 전에 왔는데 100명 넘게 기다리고 있어서 찜해둔 샤넬 백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억눌린 쇼핑 욕구가 '보복 소비'로 터져나오며 명품 쇼핑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샤넬이 보복소비의 핵심 표적이다.

이날 샤넬 매장이 있는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강남점, 롯데백화점 본점·잠실점과 부산 센텀 신세계백화점에는 대규모 인파가 몰려 장관을 이뤘다. 부산 신세계백화점 앞에는 아예 텐트를 치고 밤부터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신세계백화점은 샤넬 오픈런으로 사람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오전 10시에 샤넬 매장 진입 번호표를 배분하고 있지만 이제는 번호표를 받기 위한 새로운 줄이 경쟁적으로 형성되는 분위기다.

6일 오전 9시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개점 전부터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 손님들6일 오전 9시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개점 전부터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 손님들
오전 10시가 되자 신세계 강남점의 샤넬 측 직원은 번호표 배부를 시작했다. 태블릿 PC에 연락처를 입력하고 자리를 뜨면 카카오톡으로 입장 5분 전에 알림 메시지를 준다. 하지만 번호표 배부는 일부에 그쳤고 줄 서서 기다린 수 많은 사람들은 매장으로 뜀박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10시30분 백화점이 개점하자마자 추가로 번호표를 받으려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샤넬 매장 앞으로 순식간에 몰렸다. 샤넬 직원들이 매장 앞으로 나와 급하게 줄을 정리했다. 줄은 샤넬 매장을 빙 돌아 약 100m 가량 형성되며 반클리프앤아펠 매장까지 이어졌다.

아침 11시에 대기표를 받았다고 해도 200명 이상 기다리고 있다면 오후 5시 이후에나 매장에 들어갈 수 있다. 낮 12시 이후에 번호표를 받을 경우 당일은 매장 방문이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앞서 입장하지 못하면 재고가 동났을 가능성이 높다. 샤넬이 가격 인상을 예고한 것도 아니지만 주말마다 수 백 명의 인파가 백화점 샤넬 매장에 몰려들고 있다.

인기가 많은 것은 샤넬만도 아니다. 오전 11시 전에 루이비통과 에르메스 대기도 30팀이 넘었다. 2~3시간은 기다려야 하는 것. 구찌, 발렌시아가, 고야드 매장에도 줄이 형성되며 인기였다.

코로나19로 1년 넘게 억눌린 쇼핑 욕구는 명품 '보복 소비'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 백화점 1층 뷰티 코너와 2층 명품관, 지하 1층 식품관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3층 명품 시계 매장이 있는 곳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4층 위로 남성·여성 패션관은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보복 소비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는 국면에서 시중 유동자금이 명품에만 쏠린 것이다.

6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샤넬 매장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손님들/사진=오정은 기자6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샤넬 매장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손님들/사진=오정은 기자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2030 세대의 해외여행 관련 소비와 코로나19로 인한 패션의류 소비가 감소한 풍선효과로 명품 가방에 대한 쇼핑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코로나19 해소 국면에서도 해외여행과 패션의류에서 아낀 돈을 소장가치 높은 명품 가방에 투자하려는 욕구는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비경제적인 이슈, 9·11 테러나 신종플루 등으로 쇼크가 발생한 후에는 항상 보복 소비를 중심으로 한 경기 반등이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전반적 소비심리를 뜻하는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2.0p 상승한 97.4를 기록했다. 아직 경기를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집값 상승과 주가 상승으로 인해 자산과 소득 증가, 재난지원금 지급 등으로 가처분 소득이 늘면서 소비심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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