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초점] 아시아가 대세? 변화 중인 할리우드

뉴스1 제공 2021.03.0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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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 감독 © AFP=뉴스1클로이 자오 감독 © AFP=뉴스1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한쪽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일어나고, 한쪽에서는 아시아인이 시상식의 최고상을 받는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의 영예는 영화 '노매드랜드'에 돌아갔다. '노매드랜드'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경제적으로 붕괴한 한 기업 도시를 떠나게 된 여성이 홀로 밴들 타고 유목민처럼 여행을 하며 벌어진 일을 그린 영화다. 기자 출신 제시카 브루더 작가의 동명 논픽션을 원작으로 했다.

'노매드랜드'의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작품상 뿐 아니라 감독상까지 품에 안았다. 이로써 주요 부문 2관왕을 차지한 '노매드랜드'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데 이어 또 한 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또 이 영화는 전미비평가협회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고, 뉴욕영화비평가협회상 감독상 등 '오스카 레이스' 기간 주요 상들을 싹쓸이 하고 있는 중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 베이징 출신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뉴욕 티시 예술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했다. 2015년 '내 형제가 가르쳐준 노래'로 감독 데뷔를 한 뒤 2017년 칸영화제 출품작 '로데오 카우보이'로 주목을 받았다. 또 배우 마동석이 출연해 우리나라 관객들에도 큰 기대를 얻고 있는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 번 아시아 영화인들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클로이 자오 감독 뿐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 감독인 정이삭 감독이 영화 '미나리'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미나리'는 영화에서 사용된 언어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 외국어 영화로 분류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주요 부문 후보로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이 없는 아카데미 시사식에서는 유력 수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 뉴스1영화 '미나리' 포스터 © 뉴스1
정이삭 감독(리 아이작 정)/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뉴스1정이삭 감독(리 아이작 정)/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뉴스1
정이삭 감독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후 "'미나리'는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단지 미국의 언어나 그 어떠한 외국어보다 깊은 진심의 언어다, 나 스스로도 그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물려주려고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언어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의 수상 소감은 미국 영화가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할리우드는 '화이트 워싱'(백인이 아닌 캐릭터에 백인을 캐스팅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돼왔을 정도로 인종차별이 극심했다. 유색인종 중에서도 특히 아시아인은 대중매체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실력 있는 아시아계 감독 및 영화인들이 등장하고, 아시아인 주인공을 앞세운 작품들이 부각을 받으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더불어 다양성 확보를 위한 업계 내부의 자정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극영화상까지 총 4개 부문에서 수상한 것은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중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페어웰' 역시 그해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아콰피나)을 수상하며 '아시아 파워'를 보여줬다. 두 작품의 약진은 올해까지 이어져 '미나리'로 연결됐다.

그 사이 새로운 위기가 닥쳐오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급증한 것. 지난달 27일(현지시간)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 폴리스퀘어에서는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증오 범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고, 수백명이 이 시위에 참석했다.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스톱 APPI헤이트'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 사이에 아시아계 인종차별이 2808건 보고됐다고 밝혔다.

무료로 공개된 '윈드'의 한 장면 © 뉴스1무료로 공개된 '윈드'의 한 장면 © 뉴스1
하지만 작용에 반작용이 따르듯 증오나 차별을 저지하려는 할리우드 업계의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는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와 연대하기 위해 최근 두 편의 단편 애니메이션 '윈드'(WIND)와 '플로트'(FLOAT)를 온라인상에 무료로 배포했다. '윈드'는 한국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플로트'는 필리핀 아버지와 아들을 소재로 했다.

픽사 측은 "아시아인들과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연대해 반아시아 증오에 맞설 것"이라며 "아시안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얼마만큼 (사회의) 포용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이 작품들을 공개하며,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발표했다.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아시아계 감독, 배우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쏠리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이제는 막기 어려운 대세가 됐다. 지난해 100% 외국어로 채운 외국 영화에 최고상을 주며 '로컬 시상식'을 벗어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올해 또 한 번 '차별'이 아닌 '포용'의 결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는 4월26일(미국시간 4월25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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