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수한 비트코인 처리규정 없어 '존버'했더니…5억→105억

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임소연 기자, 홍순빈 기자 2021.03.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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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비트코인, 지하에선 이미 중앙통화(下)

압수한 비트코인이 5억→105억, 처분은 어떻게 하나
/사진=임종철 디자이너/사진=임종철 디자이너


비트코인이 범죄에 쓰이면서 범죄자 검거 후 처리가 논란이 됐다. 전자파일인 형태의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현행법상 범죄를 통한 직·간접적인 재산 이익은 몰수해 국고로 귀속시킬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특별한 정의가 없었다.

논란 끝에 2018년 대법원은 "비트코인도 '무형자산'의 한 종류로서 범죄수익으로 얻은 비트코인은 몰수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몰수한 비트코인의 처리도 문제였다. 논의가 길어지면서 정부가 몰수한 비트코인의 가치가 급등하는 일도 발생했다.



◆사법사상 첫 비트코인 '무형자산' 인정

/사진 = 김지영 디자인기자/사진 = 김지영 디자인기자




2018년 처음으로 '물리적 실체'가 없는 화폐를 무형자산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안모씨(33)의 상고심에서 범죄 수익인 191BTC(비트코인)를 몰수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안씨는 2013년 12월부터 3년간 인터넷 성인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122만명에게 불법 음란물 23만여건을 유포하면서 상품권이나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도록 했다. 검찰과 경찰은 안씨가 이런 수법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216BTC에 달한다고 봤다.

그러나 1심 재판부(수원지법 반정모 판사)는 현금에 대한 추징은 명령했으나 비트코인 몰수 구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트코인 특성상 객관적 기준 가치를 산정할 수 없어 범죄 수익 부분을 특정할 수 없고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는 전자화된 파일 형태라 몰수가 적절치 않다고 봤다.


그러나 검찰 항소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비트코인은 물리적 실체는 없지만 거래소를 통해 환전이 가능하고 가맹점에서 재화나 용역을 살 수 있어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191BTC 몰수를 명령했다. 선고 내용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법원은 피고가 보유한 비트코인은 수사기관이 생성한 전자지갑에 이체돼 보관하는 식으로 압수됐고 이체기록이 블록체인을 통해 공시돼 있어 압수된 비트코인에 대한 몰수가 가능하다고 봤다.

또 압수된 비트코인을 피고인에게 돌려주면 음란 사이트 운영으로 얻은 이익을 방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이 범죄로 얻은 수익임이 확인만 되면 범죄수익은닉법에 따라 몰수할 수 있다"고 했다.



◆3월 '특정금융정보법' 시행시 국고 귀속 가능

작년 5월 이후 급락했던 비트코인 시세가 일 년여만에 1000만원을 돌파하며 금일까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30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블록체인 카페에 설치돼 있는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보이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작년 5월 이후 급락했던 비트코인 시세가 일 년여만에 1000만원을 돌파하며 금일까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30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블록체인 카페에 설치돼 있는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보이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당시 검찰이 몰수한 191BTC의 가치는 안씨가 구속된 2017년 4월 기준 약 5억원이었다. 이후 가치는 2018년 1월 항소심 당시엔 7억여원, 대법 확정 판결이 내려지던 같은 해 5월엔 15억여원으로 올랐다. 현재는 105억여원까지 상승했다.

이 비트코인은 관련 법령 미비로 국고로 귀속되지 못하고 검찰이 보관해왔다. 그러나 이달부터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공매 등 처분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금융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 등을 규제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담고 있는 특정금융정보법은 이번 개정안에 가상자산에 대한 조문을 추가했다. 이 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를 내려 재산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가상자산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공매 위탁을 할지, 검찰이 직접 사설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매각할지 등 처분 방식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핀란드 세관, 1981비트코인 판매 예정

핀란드 정부는 2016년 몰수한 비트코인을 판매할 계획이다. 이로써 정부는 100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핀란드 세관은 2016년 마약상 체포 과정에서 1981BTC를 몰수했다 .

핀란드 세관은 몰수 비트코인 판매를 세관에서 직접 진행하거나 브로커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처분 완료 후 발생한 수익은 핀란드 국고에 귀속된다.

해당 비트코인 물량의 가치는 몰수 당시 86만달러(9억원)였는데 현재 현재는 7500만달러(843억원)로 뛰었다. 핀란드 세관은 2018년 해당 비트코인을 경매를 통해 처분하려 했으나 "다시 범죄자의 손에 돌아갈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를 들어 철회했다.

이보다 앞서 2014년 미국 뉴욕지방법원은 마약밀거래 사이트 운영수익을 몰수해 국고로 귀속했다. 미 대법원도 피고인의 전자지갑 안에 있던 비트코인이 중대범죄로 얻은 재산상 가치가 맞다고 인정했다.

임소연 기자

"비트코인의 흐름을 쫓아라"…추적 나서는 경찰, 프로그램까지 개발
'Follow the bitcoin.(비트코인의 흐름을 쫓아라)'

비트코인의 흐름을 추적하면 범죄가 보인다. 과거 '돈의 흐름을 쫓아라(follow the moeny)'는 범죄 수사의 명제가 이제 비트코인에도 통한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익명성과 추적이 힘든 점을 앞세워 지하 세계의 '중앙화폐'가 되고 있다.

미국 암호화폐 분석회사인 '체이널리시스'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질 때도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으로 접속 가능한 비밀 웹사이트)에서 비트코인 가치는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다”며 “그만큼 불법적인 용도로 비트코인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전 세계 다크웹 범죄 관련 비트코인 계좌의 거래 총량은 약 35억달러(블록체인 포렌식 업체 사이퍼트레이스)에 달한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도난, 사기 등으로 인한 손실은 19억달러(2조1350억원)를 넘어섰다. 'Follow the bitcoin'의 시대다.

◆미국 FBI, 현장수사와 사이버수사 병행해 범죄자 검거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미국에서는 다크웹 브라우저인 '토르(Tor)'에서 비트코인 등을 이용해 마약과 불법 무기류 등이 거래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현장수사와 사이버수사를 병행해 암호화폐 범죄를 잡아내고 있다.

먼저 밀거래 현장 증거를 확보하고 용의자의 노트북, 핸드폰 등을 확보하는 현장 수사 단계를 거친다. 이후 거래장부를 다운로드받아 용의자가 사용했던 주소 또는 개인키를 확보한다.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거래자들을 찾아 범죄조직 일당을 잡아낸다.

'네트워크 압수수색'이라 불리는 '네트워크조사기법(NIT)'도 사용한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은 후 다크웹 사이트에 접속한 컴퓨터를 해킹해 범죄자의 신원을 확보하고 주소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2013년 마약 등을 비트코인으로 거래해온 온라인 사이트 '실크로드'를 잡았을 때도 FBI는 현장수사와 사이버수사를 병행했다. FBI는 마약 배달 우편서비스를 추적하고 코딩 실수로 생긴 보안상의 결함을 발견하면서 실크로드에서 벌어지는 불법 거래의 단서를 잡아냈다. 이후 컴퓨터 등에서 발견된 비트코인 거래 내역 등을 추적해 범죄자들을 추적해갔다.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거래소를 통한 정상적인 암호화폐 거래에서 범죄가 발생하기 쉽지 않으나 다크웹을 통하면 범죄 수사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피의자의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확보해 단서만 찾으면 블록체인으로 연결된 거래 내역 등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 추적 시스템 계속 개발…국제공조도 적극 참여

/사진 = 뉴스1/사진 = 뉴스1

국내에서도 자금세탁이나 탈세, 마약밀매 등 비트코인 관련 일상범죄가 늘어나며 수사 당국이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우선 검찰은 대검찰청 내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변화하는 수사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특정 범죄에 사용된 IP주소를 묶는 '클러스터링 기법'을 활용하고, 범죄에 이용되는 암호화폐 거래 추적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사이버수사과는 악성코드나 다크웹 로그정보 등 사이버범죄에 사용되는 정보들을 분석해 일선 검찰청과 합동해 수사를 한다. 의심스러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거래가 있으면 해당 코인의 거래 기록을 살펴 실제 유통 여부를 판단해 사기성 등을 입증한다.

경찰에서는 2016년부터 비트코인 거래추적 프로그램을 해외에서 구매해 사용 중이다. 유로폴, 인터폴, FBI 등에서도 활용 중인 이 프로그램은 비트코인 거래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비트코인 환전을 취급하는 국내외 거래소 파악이 가능하다. 한 명이 다량의 비트코인을 갖고 있으면 거래정보와 인터넷 IP주소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비트코인 관련 범죄가 늘어나자 경찰청은 추적 프로그램을 추가 구매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부터는 직접 개발한 암호화폐 추적 시스템도 이용하고 있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장(총경)은 "해외 솔루션에 따르는 비용 지출이 적지 않기 때문에 직접 시스템을 개발하게 됐다"며 "더 정교한 추적과 시각화를 위한 업그레이드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 협력이 필수적인 만큼 지난해엔 인터폴, 해외거래소 등과의 국제 공조 담당 인력도 대폭 확대했다. 최 총경은 "범죄자들의 기술 등이 날로 복잡해지고 있다"며 "정기적인 교육 등을 통해 경찰들도 끊임없이 암호화폐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홍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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