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프트 펑크가 지구를 지배했을 때, 1993~2021

박영웅(대중음악 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3.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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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다프트펑크 페이스북 사진출처=다프트펑크 페이스북


며칠 전 SNS에선 추모에 버금가는 탄식이 쏟아졌다.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그룹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28년 만에 해체를 발표한 데 대한 반응이다. 지난 5년간 아무 소식이 없던 이들의 공식 계정에 올라온 새 소식이 해체라니. 마지막 영상 속 두 로봇이 마주했을 땐 헬맷을 벗고 민낯이라도 공개하나 싶었는데 말이다. 대변인을 통해 해체를 공식화했지만 의구심을 품은 팬들의 추측들은 여전하다. 지난 앨범들과 피규어의 가격은 크게 치솟았고 그들이 쓰던 헬맷 모조품들이 동나는 등 후폭풍이 거센 걸 보니 이들이 팝계에 끼친 영향이 짐작이 간다.

다프트 펑크는 22일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8분가량의 'Epilogue' 영상을 게재하며 해체를 알렸다. 2006년에 제작된 다프트 펑크의 영화 '일렉트로마' 속 마지막 장면을 담은 이 폭파영상은 하루 만에 1200만 조회수를 올렸다. 헬맷 듀오는 마지막을 알리는 영상마저 그들만의 감성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우주에서 음악을 위해 넘어왔다는 그들의 세계관도 결국 시한폭탄이 폭발하면서 1993~2021이란 숫자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전세계적으로 1200만 장의 앨범 판매, 7번의 그래미상 수상을 이뤄낸 다프트 펑크는 전례없는 문화적 혁명을 일으킨 전자음악 뮤지션으로 꼽힌다. 한때 클럽 씬을 강타한 칸예 웨스트의 'Stronger'는 다프트 펑크의 'HBFS(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샘플링한 곡으로 유명하고, 퍼렐 윌리엄스와의 협업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Get Lucky'와 더 위켄드의 'Star Boy' 등은 전자음악에 여러 장르를 결합시킨 성공사례로 통한다.

트렌드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음악작업 방식은 아날로그일 정도로 디테일에 집착했고,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음악 그 이상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장치를 뒀던 이들이다. 또 자본과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 대한 존중을 지켜나간 자세로도 유명했다. 가뭄에 콩 나듯 최고의 공연을 선사했던 것처럼.

사진출처=다프트펑크 공식홈페이지 영상 캡처 사진출처=다프트펑크 공식홈페이지 영상 캡처

특히 나이 들지 않는 로봇의 정체성을 구축한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 '헬맷'은 28년을 지킨 특별한 마케팅이 되었고 셀럽의 신비주의와 일반인의 삶을 동시에 지켜낸 신의 한수였다. "픽션과 현실의 경계에 흥미가 있어 가공의 페르소나를 창조한다"는 멤버 토마스의 말처럼.

'혁신'이라 불린 그들의 궤적을 쫓다보니 현 음악시장에 펼쳐진 현상들이 한꺼번에 오버랩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되었을지 모를 다프트 펑크를 보면서 말이다. 이들의 '헬맷'은 멀티 페르소나를 대표하는 '부캐 전성시대'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탄생한 그들의 '세계관'은 이제 모든 뮤지션들의 음악 그 이상의 기초가 되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교집합과도 같았던 그들의 모든 건 음악이고, 브랜딩 자체였다.

이제야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낯선 풍경이 현실화되는 요즘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AI 분야다. 그룹 거북이의 터틀맨, 고 김현식의 생전 자료를 딥러닝한 AI 홀로그램을 무대로 불러냈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연말 콘서트에서 고 신해철을 소환해 소속 가수들과 협업 무대를 펼치기도 했다. 최근 방영한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선 고 김광석이 2002년 발표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부르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수준 높은 IT기술과 차별화된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 건 K-POP 업계에서 더욱 본격적이다. SM의 신인 걸그룹 에스파는 멤버별로 만든 AI 아바타와 아예 팀을 꾸렸고, 네이버의 증강현실 앱 '제페토'에서는 블랙핑크, 트와이스의 아바타를 만날 수 있다. 엔씨소프트가 출시한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에서는 아이돌의 AI 보이스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여기에 창작의 영역까지 침범한 AI 작곡이 보편화된다면 음악 생태계가 풍성해질 것이며,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K-POP의 가능성은 더욱 크게 열릴 것이다.

다프트 펑크 두 멤버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달링'이라는 록 그룹을 만들었고 그 밴드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실패는 새로운 EDM 시대를 탄생시켰다. 'Daft Punk'는 록 밴드 '달링' 시절 언론으로부터 받은 무자비한 혹평 'A daft punky Thrash'란 문구에서 따온 팀명이다. 이제 전자음악의 아버지 또는 레전드, 그 이상의 수식어로 남을 다프트 펑크의 역사를 쫓다보니 그들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는지 새삼 느낀다. 이제 지구인들은 누구로부터, 또 어떤 새로운 것들에 정복당할 것인가.

박영웅(대중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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