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서울 서초구 신반포15차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 있었다. 경쟁은 삼성물산, 디엘이엔씨(당시 대림산업), 호반건설의 3파전이었다. 5년여간 정비사업 시장에서 떠나 있던 삼성물산이 뛰어들면서 '래미안의 귀환'으로 화제가 됐었다.
이름값에서 밀리는 호반건설은 건설사가 조합에 빌려주는 사업비에 연 0.5% 금리를 제시했다. 삼성(1.9%), 대림(CD금리+1.5%포인트)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공사비 390억원 무상지원까지 내걸었다. 이 정도면 역마진이라는 업계의 평가였다. 시공사가 조합에 돈 주고 공사해 주는 셈이다.
신반포15차 재건축조합의 사례는 조합원들의 당장의 돈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돈 많은 강남 주민들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2·4대책 발표 후 마포 성산시영아파트, 광진구 중곡아파트, 심지어 광명시 하안주공3단지에도 '민간 재건축 진행'(공공시행재건축 반대의 의미)이라는 현수막을 내건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민간재건축 대신 '공공재건축'을 하겠다던 조합이 조건이 더 좋은 '공공시행재건축'에는 반감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공공'이어서다. 공공시행재건축은 조합을 해산하고 공공이 조합원들의 재산권을 넘겨받아 단독으로 시행하는 사업 방식이다. 실제로 조합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공이면 일단 싫다'는 반응을 보인다.
조합 방식의 정비사업은 고비용 구조다. 조합설립부터 착공까지 건축심의, 교통영향평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몇번의 총회를 열어야 한다. 시공사 선정 뿐만 아니라 각종 건축자재 선정까지 모두 조합이 한다.
이러다 보니 조합방식의 정비사업은 평균 13년이 걸린다. 직장 다니며 사서 은퇴 후 입주하거나 부모가 사서 자식이 입주한다고 할 정도다. 조합에게 시간은 돈이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은 많아진다. 조합원들간 갈등이 수시로 발생하고 조합은 각종 비리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 숱한 조합장이 감옥에 갔고 조합원들간, 조합과 조합원들간에 소송이 줄을 잇는다. 재건축조합들이 최근 시행을 부동산신탁사에 맡기는 사례들이 많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의 한 디벨로퍼는 "건설사들은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이 원하면 뭐든 맞춰주려고 하지만 갑만 해봤던 공공기관이 뭐가 아쉬워 그렇게 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정부는 오히려 민원에 민감한 공공기관이 민원이 무서워 요구를 다 들어줄까봐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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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이 다 하겠다'는 '공공이 대신해 다 해주겠다'의 다른 표현이다. 조합 방식으로 할때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들을 공공이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겠다는게 공공시행재건축의 진짜 인센티브가 아닐까.
공공시행재건축이 민간재건축의 대안이 되려면 공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사진=인트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