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와 방치 사이 [우보세]

머니투데이 박준식 기자 2021.03.03 05:00
글자크기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나누고 있다. 손병환(왼쪽부터) 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금융위 제공) 2021.2.16/뉴스1  (서울=뉴스1) =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사 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나누고 있다. 손병환(왼쪽부터) 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금융위 제공) 2021.2.16/뉴스1


# 1. 지난 5대 금융지주사 회장단 회동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다. 동선이 알려진 행사에서 기자들을 멀찍이 앞선 그는 선약 식사를 먼저 하고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회동 후 기자들이 뒤늦게 따라붙어 4연임 여부를 질문하자 “부담이 크다. 나는 그만 둬야 하는 사람인데…”라고 읊조렸다. 동석한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하나금융 이사회 판단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추인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 2. 금융감독원 노조는 지난달 말부터 연일 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윤석헌 원장이 채용비리 연루자들을 승진시켰다는 연유다. 하지만 그건 명분이고 노조의 비판은 윤 원장이 연임에 뜻을 두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부터 격렬해졌다.

25일에는 아예 장외집회를 열고 원장의 기업 사외이사 시절 활동비까지 들추기 시작했다. 윤 원장이 아니더라도 그가 추천한 다른 교수 출신이 다시 낙하산으로 올 수 있다는 염려 때문으로 보인다. 노조는 “영(令)이 서지 않고 있다”고 했다.



# 3. 은성수 위원장은 19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에 대해서 “화가 난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한국은행이 금융위 월권을 지적하며 “빅브라더냐”고 쏘아붙이자, “그런 식 비판은 안되는 것”이라고 얼굴을 붉혔다.

사태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주열 한은 총재는 확전을 마다치 않았다. 23일 국회에 나와 “전금법은 빅브라더법이 맞다”며 “금융위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재반박했다. 고고한 한은 총재가 진흙탕 싸움을 마다치 않은 셈이다.

청와대가 금융에 마지막으로 관심을 둔 때가 언제일까. 기록을 살펴보니 정권을 잡은 지 1년 만인 2018년 4월 사건이 눈에 띈다. 재벌 및 금융 저격수라 불리던 김기식 전 의원을 금융감독원장에 임명한 일이다. 임종석 비서실장 재임기다.


문재인 정부와 586세대가 금융 영역에서 그립을 세게 쥐려 했던 시도는 이게 마지막이었던 듯 싶다. 김 원장이 임명 18일 만에 여러 문제로 최단기간 낙마하면서 금융은 별천지가 됐다. 진보 성향의 금융연구원 출신들이 한 자리씩 차지했고 관료들의 역할은 머리보다 손발에 가까웠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 자리 잡았던 청와대는 2년간 금융을 돌볼 겨를이 없던 것 같다. 기업과의 관계를 복원해야 했고, 자신들의 1가구 2주택을 해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검찰과 싸우는 동안에 코로나19(COVID-19)도 터졌다.

그랬겠거니 하지만 요즘 금융판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꼴사나운 수준이다. 전쟁 같은 재난이 와서 피란민들이 속출하는데 오히려 수십조원씩 돈을 벌어들인 쪽에선 밥그릇 싸움이 한창이다. 그들만의 리그라 괜찮은 것인가.

현 정부는 집권하면서 전 정부들과 달리 민간 금융사에 낙하산을 꽂는 적폐를 철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KDB산업은행이나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 금융기관과 금감원 등 감독기구는 물론 하다못해 마사회나 새마을중앙회에도 죄다 자기사람을 심어놓고 티가 나는 금융영역은 손대지 않았다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민간 금융사 회장들은 3연임을 넘어 4연임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통화정책을 위해 전 정권에서 임명됐지만 7년째 재신임된 한은 총채는 금융수장과 영역 다툼에 나섰다. 서로 소비자보호를 위한다지만 네이버 카카오가 들어올 후불결제 영역을 서로 뺏기지 않으려는 땅따먹기인 줄 만인이 다 안다.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대놓고 관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민생과 이반해 저들끼리 벌이는 영역 다툼이나 유신개헌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지점까지 왔다. 한 금융사 임원이 말했다. “차라리 이명박 때는 틀어쥐고 서민 미소금융이라도 만들었지…”
관치와 방치 사이 [우보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