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비의 파이팅 정신이 오늘 필요한 이유

고윤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3.0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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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써브라임아티스트에이전시사진제공=써브라임아티스트에이전시


3.1절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가 더 힘들까 지금의 코로나19 정국이 더 힘들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제 강점기를 낭만의 시대로 칭하는 혹자들도 있지만 그건 비교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나라의 모든 주권을 강탈당한 일제 강점기 시절이 더 힘들었으리라. 모든 고통과 힘듦은 정반대의 쾌락과 낭만과 맞닿아있는 것 같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면, ”아 그땐 학교나 직장에 안나가도 됐는데“”거리에 사람들이 없어서 참 좋았어“라고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추억은 자기 편의대로 포장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2년째 접어든 코로나19로 인해, 속속들이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과 가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버틸 수 있는 물리적 위기의 한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 이상의 위로나 격려도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재난지원금을 더 받아도 별 느낌이 없다. 그거 가지곤 펑크 난 가정경제를 살려내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위로보다는 차라리 마블의 히어로 영화나 파이팅 정신이 아주 강한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3.1절을 맞아 3.1 정신을 좀 우울한 세대에게 알려줘 힘을 북돋워 주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도 마땅한 영화가 없다. ,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훌륭한 위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유관순부터 시작해서 박열, 윤동주까지 꽤 많다, 그러나 시대가 워낙 다르고, 너무 존경스럽고 경이로운 분들이어서 감화를 받다가도 ‘내가 정말 못나고 한심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자책을 더 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띈 영화가 바로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뭰 소리야""라는 반응이 나올 걸 안다. 영화보다 주인공 비의 근성, '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개봉 당시 '자전차왕 엄복동'은 2000년대 초반 최고 슈퍼스타였던 비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선고 같은 영화였다. 2019년 2월에 개봉한 '자전차왕 엄복동'은 지금 백신개발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셀트리온에서 150억을 투자해서 관객수 17만을 기록하고, 2주 만에 처참하게 극장에서 내려진 영화다. 비는 주인공 엄복동 역을 맡아 몸을 사리지 않은 열연을 펼쳤다.


비는 개봉 즈음 자신의 SNS에 술을 한잔 걸치고 영화에 대한 소회를 올린 것 때문에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비의 시대를 잘 모르는 10대나 20대 유튜버 세대들은 그가 올린 문구를 인용해 수많은 웃긴 패러디를 만들어냈다. 엄복동의 관객수 17만은, ‘UBD’라는 화폐단위로까지 불리며, 조롱과 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1UBD는 17만이라는 숫자를 의미했다. 비의 데뷔시절부터 팬이었던 나는 몹시 속상했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은 완성도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너무 세련되게 생긴 비가, 일제 시대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카메라는 자꾸 엄복동 캐릭터보다는 자전거를 타는 비의 탄탄한 허벅지 근육만 클로즈업했다. 민망했다. 차라리 비가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에 출연했으면 훨씬 더 어울렸을텐데….

비(왼쪽)와 박진영, 사진출쳐= 비 SNS비(왼쪽)와 박진영, 사진출쳐= 비 SNS
비가 슈퍼스타가 됐던 건 허벅지 근육 때문이 아니다. 여자들이 그의 군살 없는 근육질 몸매만 좋아한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가 그의 팬이었을 때, 그를 좋아한 이유는 그가 발산하는 ‘목숨을 건 에너지’ 같은 것이었다.

'자전차왕 엄복동'을 계기로 비의 이미지는 카리스마의 대명사에서 ‘삑사리코믹캐릭터’의 대명사로 전락(?)하는 듯싶었다. 거기서 끝나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비의 캐릭터를 엄복동의 삑사리 캐릭터로만 알고 있는 유튜버세대들이 어떻게 '깡'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카리스마를 내뿜어대는 비의 모습에 더 웃기 시작했다.

카리스마 사나이 비가 이런 현실을 견딜 수 있을까? 얼마나 상처받을까? 연예인 걱정은 가장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늘상 해왔지만 많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건 정말 우려였다. 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사람'이었다. 자신을 패러디하며 TV에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웃기는 모습으로 등장해 신선한 웃음과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본인의 유튜브 채널 '시즌비시즌'을 중심으로 '놀면 뭐하니?' '미우새' '아는형님', '전참시' 등 다양한 예능프로에서 구수한 수다맨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나와서 아줌마처럼 수다를 떨어대고 있다. 올 초 박진영과 듀엣으로 낸 앨범 ‘나로 바꾸자‘의 뮤직비디오는 아예 스토리 자체가 코믹 컨셉트다. 참 대단한 비!! 짝짝짝!

자신의 모든 위기를 기회로 바꿔버린 비의 행보를 보면,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기어이 버텨내 왕이 된 '라이온 킹'의 주인공 심바가 생각난다. 정말 강한 사람은 타인을 굴복시키고 상황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상황에 적응해버리는 자가 가장 무섭고 강한 자다. 비는 분명 ’나로 바꾸자‘의 가사를 만들며 ’나를 바꾸자‘로 수없이 되뇌이며 정신무장을 했을 것이다.

정지훈(비)이 가진 불사조 같은 파이팅 정신이 오히려 이 코로나19 정국을 이겨내는 데 정말 필요한 정신자세가 아닐까?

고윤희(칼럼니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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