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 '고백' 감독 "아동학대, 꼭 다뤄야 했죠…사회적 순기능 있길"

뉴스1 제공 2021.02.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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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영 감독/리틀빅픽처스 제공 © 뉴스1서은영 감독/리틀빅픽처스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이 인터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 초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사실 아동학대는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체벌에 대한 낡은 인식과 부족한 제도적 장치로 인해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24일 개봉한 영화 '고백'은 이러한 아동학대를 다루면서, 동시에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사회적 순기능을 하고자 한다.

영화를 연출한 서은영 감독은 2016년 장편 데뷔작 '초인'으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한 이후 5년여 만에 '고백'을 선보이게 됐다. 영화는 7일간 국민 성금 1000원씩, 1억원을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유괴 사건이 일어난 날 사라진 아이 보라(감소현 분), 그 아이를 학대한 부모에게 분노한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 분), 사회복지사를 의심하는 경찰 지원(하윤경 분)과 나타난 아이의 용기 있는 고백을 그린 범죄 드라마다. 2018년도에 촬영한 '고백'은 3년만에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한 서은영 감독은 사실 이공계 출신으로 대기업 반도체 회사 연구원으로 5년여간 일을 하다가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꿈을 좇았다. 그런 서은영 감독에게 이번 영화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 한편에 있던 영화라는 꿈처럼, "이상하게 마음속에 남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소재였다"고 밝혔다. 뉴스1이 최근 서은영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백' 포스터 © 뉴스1'고백' 포스터 © 뉴스1
-전작인 '초인'에서는 청춘을 다뤘는데, 이번에는 아동학대 소재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연출했다.

▶사회 고발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이런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날 선 상태에서 이런 소재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내 영화 인생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초반에 이런 영화를 찍어야겠더라. 그리고 아동학대라는 문제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가, 다시 잠잠해지곤 하는데 '고백'이 영화적으로 환기해주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백'은 일반적인 아동학대 소재 작품들과 다른 설정들이 돋보인다. 사회복지사의 한계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일반적인 모습은 이전에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충분히 훌륭한 다른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현실 구조나 사회에 닿아있는 부분에 치중했다. 사회복지사의 경우도, 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라서 조심스럽지만 어쨌든 영화에서는 한계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복지사 여건은 다들 잘 아실 것이다. 최전방에서 일하는 분들인데 제도적으로 막히면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취재하면서도 정말 답답했지만 현실이라고 느꼈다. 사회고발성 영화이니만큼, 이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경찰 역시 한계성을 지닌 설정이 부여됐다. 신입 순경이자 여성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영화에서 다루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아닌, 어떤 역할을 갖고 있는 인물들로 구성됐다. 경찰은 전방에서 일하는 사람, 사건을 제일 처음 맡게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주연으로 설정했다. 그 속에서 지원은 신입 순경인데, 이 친구가 거대한 사회 속에 처음 발을 디딘 상황에서 시스템을 알아가고, 치이기도 하고, 한계를 아는 과정을 계속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결국 딛고,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서 손을 건네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사회 시스템에 물들지 않는 소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우리가 그런 경찰의 모습을 바라지 않나. 그런 바람이 담긴 캐릭터다.

'고백' 스틸컷 © 뉴스1'고백' 스틸컷 © 뉴스1
-박하선은 출산 후 처음 찍은 작품이 '고백'이라더라.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고도 했는데 어떻게 오순 역에 캐스팅하게 됐나.

▶대본을 다 외웠단 얘기를 보고 다시금 감동받았다.(웃음) 일단 오순이라는 역할엔 기성 배우가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제작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박하선씨 이름이 나왔다. 전 코미디 연기를 잘하신 분들에 대한 신뢰감이 있다. 박하선씨가 '하이킥'에서 코믹을 정말 잘해주셨는데, 코미디를 하는 기술에 신뢰감이 있기 때문에 뭐든 잘하시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해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마침 출산하고 쉬고 계신 상태라 시나리오를 보내드렸고, 응해주셨다. 박하선씨도 대본이 좋았다고 해주셔서 감사하다. 타이밍이 정말 잘 맞았다.

-경찰인 지원 역은 하윤경이 맡았다. 연극과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한 하윤경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우선 비슷한 연도에 학교를 다녔다. 2013년도 즈음이었다. 그때 연극을 봤는데 정말 좋더라. 무대에서 정말 빛이 나는 모습을 봐서 내 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초인'도 김정현을 연극에서 보고 '픽'했었는데, 하윤경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 촬영 당시에 하윤경씨가 경찰복을 입고 촬영 중간에 잠깐 편의점을 다녀왔는데 편의점 직원이 실제 경찰로 오해했다고 하더라. 하하. 진짜 경찰 같았다.

-보라를 맡은 아역 배우 감소현도 눈길을 끈다. 경력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만났나.

▶일단 '보라'가 학대받는 아이이기 때문에, 실제 연기할 때는 아역 배우에게 보라에 대한 잔상을 심어주지 말자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아이가 집에서 연기 연습을 하지 않고, 시나리오 전체도 읽지 않길 원했고 부모님과 상의를 해서 그렇게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전담 스태프를 붙여서 노는 것처럼 인식할 수 있게끔 했다. 소현이가 즐겁게 연기하니까 더 잘 나오더라. 지금 보라의 심정에 대해서 어떠한 디렉션은 하지 않았고, 좀 더 단순하게 진행했다. 오히려 단순하게 디렉팅을 해주니까 아이의 표현력이 더 와 닿아서 좋았다. 사실 경험이 많이 없던 배우였지만, 첫날 에너지를 딱 느꼈다. 오디션장 들어올 때부터 느껴지더라. '보라가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고백' 스틸컷 © 뉴스1'고백' 스틸컷 © 뉴스1
-학대받는 보라의 이면을 묘사할 때 주의를 기울였을 것 같다. 또 직접적인 학대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데, 연출하면서 어떤 부분을 신경 썼나.

▶우선 보라에 대한 표현 방식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편견을 주면 안 되니까. 그래서 영화 촬영하면서도 보라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계속 스스로 의심했다. 보라가 어떤 선을 넘나들지만,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넘나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만들어 나갔다. 또한 학대 장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폭력적인 부분은 애초부터 넣을 생각이 없었다. 영화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 않나. 보여주지 않고도 묘사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했다.

-영화는 두 여성 주연과 함께,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이야기도 등장하면서 여성서사 영화로도 보인다.

▶거창하게 여성서사 영화로 만들자는 건 아니었지만, 애초부터 세대가 다른, 10대와 20대, 30대 각각의 세 여자를 영화에서 다루고 싶었다. 보라가 10대, 지원이 20대, 오순이 30대를 상징한다. 현재 가장 민감하게 이러한 문제들에 처해있고, 노출돼 있는 사람들로 애초에 구상한 것이다. 이들이 서로서로 구원해주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동학대가 가정폭력과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같이 다뤄보고 싶어서 영화에 담았다. 앞으로도 여자들이 주인공을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런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고백'도 한 자리 껴줬으면 좋겠다.(미소)

서은영 감독/리틀빅픽처스 제공 © 뉴스1서은영 감독/리틀빅픽처스 제공 © 뉴스1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해 감독으로 뛰어들었다고.

▶반도체 회사를 5년 다녔다. 하하. 원래 영화를 정말 좋아했는데, 당시에 흐름에 따라 이공대에 진학하고 회사를 다녔다. 업무 스트레스를 영화 보고 글 쓰는 것으로 풀곤 했다. 한날 휴가를 내고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는데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회사에서 전화가 엄청 왔더라. 보려던 영화 일정을 다 취소하고 회사로 돌아갔는데 이 일이 계기가 됐다.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내 영화를 들고 부산에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 그래서 시험을 준비하고 2월에 퇴사하고 바로 3월에 한예종에 입학하게 됐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정말 '초인'으로 부산영화제에 갔다. 정말 좋았다. 물론 회사 그만 둘 당시에는 다들 미쳤냐고 했지만, 오히려 동료들은 응원해줬다.(웃음) 영화라는 꿈을 놓쳤단 생각을 많이 들어서 확 움직이게 된 것 같다.

-영화 말미 보라의 모습이 인상 깊다. '고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보라가 스스로 딛고 일어설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니까 어른들이 손 잡아주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지원이가 그 역할을 해냈다. 이 아이가 마지막에 고백을 하면서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겠다는 마음을 담으면서, 동시에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생각했다. 사실 우리 영화가 무언가 엄청나게 크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기를 할 수 있고, 관심이 지속된다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고백'을 힘들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내보일 수 있어서 작은 만족감은 있다.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시선들에 대해서도 무뎌지지 않게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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