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차도 못 만들 판" 미국은 왜 배터리에 애태우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21.02.2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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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 / 사진제공=로이터바이든 미국 대통령 / 사진제공=로이터


"이대로면 백악관에서 쓸 관용차도 못 만들 판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대 핵심품목 특별관리 명령을 내린 가운데 배터리(2차전지)가 포함돼 눈길을 끈다. 텍사스 한파로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태동기를 맞은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만으로는 버티기 힘겨운 상황이 됐다.

미중 간 경제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중심에 둔 한·미·일 배터리 동맹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완성차업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업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25일 현지언론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와 희토류, 배터리 등 핵심품목 공급망 점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의 공급망 차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해당 품목에 대해 글로벌 피아식별에 나선 것이다.

텍사스 한파에 놀란 바이든, 美 전력 스토리지 민낯 들켰다
배터리업계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조치가 미국 내 배터리 수요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중국 국영 배터리사 CATL과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미국과 유대가 탄탄해질 경우 무형의 수익증대 효과도 기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 직전 텍사스 한파 상황을 보고받았다. 대규모 정전과 단수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11세 아동이 정전으로 동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텍사스 상황을 보고받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26일(현지시간) 직접 텍사스를 찾을 예정이다.

바이든이 본 것은 단순한 정전이 아닌 미국 에너지공급망의 민낯이다. 텍사스는 미국 에너지화학 산업의 40%가 집적된 지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미국 산업계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였다.

전력공급은 발전과 배전망 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대규모 산업시설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ESS(대규모에너지저장장치)가 꼭 필요하다. 에너지 저장의 핵심이 바로 배터리다. 그러나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은 지난 연말 기준 60GWh 수준이다. 반면 중국은 450GWh, EU(유럽연합)가 170GWh에 이른다.


모빌리티보다 더 큰 시장이 바로 ESS로 대표되는 에너지 스토리지 시장이다. 수소 생산 최고 선진국인 호주의 수소 대전환을 불러온 것도 2017년 남부 대정전 사태로 인한 ESS 보급 확대였다. 일론 머스크가 자비로 호주에 ESS를 보낼 정도였다.

미국의 배터리 생산능력 부족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셰일가스 집중 당시부터 미국 에너지자립의 불안요소로 지적받아 왔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 배터리가 '뉴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모빌리티 문제는 더 심각, 관용차도 못 만들 판
텍사스한파 / 사진제공=뉴시스텍사스한파 / 사진제공=뉴시스
순수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모빌리티 분야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 내에서 "관용차도 못 만들 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 정부는 관용차를 단계적으로 순수전기차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내에서 미국 노동자가 미국 부품을 60% 이상 활용해 만든 자동차만 관용차로 인정한다.

순수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원가비중은 40% 이상이다. 그런 배터리가 품귀다. LG와 SK가 각각 미국 공장 신증설에 나섰지만 태부족이다. 사실상 미국서 생산된 파나소닉 배터리를 탑재하는 테슬라 말고는 관용차로 쓸 차가 없다. 관용차도 못 만든다는건 그런 상황을 빗댄 자조적 조크다.

정부는 난색 정도지만 기업들은 애가 탄다. 블룸버그는 짐 팔리 포드 CEO(최고경영자)가 "배터리를 내재화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내재화를 결정한다고 내일 당장 만들 수 있는 배터리가 아니다. 미국 현지서는 기존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SK와 협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는 백악관 압박용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CATL은 2025년까지 500GWh 증설을 목표로 대대적인 글로벌 배터리 설비 투자에 들어갔다. 한국 3사 투자계획을 합산해도 따라가지 못할 양이다. 중국 공산당이 주도해 육성하는 CATL이다. 500GWh 중 미국 내 투자는 당연히 단 한 건도 없다.

미국 내외 상황을 종합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그린뉴딜'의 첫 시험대가 뜻밖에 배터리 산업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 주문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돈 줄테니 공장을 지어달라고 해도 미국에 공장 지을 업체가 없다"며 "배터리 없는 바이든의 그린뉴딜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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