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혜 디자이너 / 사진=이지혜 디자이너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중심으로 '학교폭력'(학폭) 폭로가 이어진다. 진위를 묻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증할 방법은 마땅찮다.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과거 가해자와의 대화 내용이나 메시지, 게시글이 유일한 증거다.
학생들은 "학폭은 '기록'으로 남겨 불이익줘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년간 일기장과 상담 등을 통해 담임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대개 "알겠다"고 한 뒤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고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유일하게 징계위원회를 열어줬다. 가해학생은 A씨에게 사과했고 일주일간 교내 청소 처분을 받았다. 남은 2년간 반을 분리해주겠다고 했지만 3학년 때 A씨는 또다시 가해학생과 같은 반이 됐다.
A씨는 가해학생들이 두려워하던 '생활기록부(생기부) 징계 기록'이 남길 바랐다. 그러나 징계는 '청소'로 끝났다. A씨는 "가해학생이 어떤 불이익도 없이 졸업해 대학생활을 잘하고 있는 걸 보면 억울하다"며 "'한번의 실수'라며 봐주지만 상식적으로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게 잘못됐단 걸 모를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학생을 제대로 분리하고 심한 괴롭힘은 기록으로 남겨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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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학폭 증인으로 나섰던 피해자의 친구 B씨(26)는 "생기부를 목숨처럼 여기는 지금이라면 기록만이 확실한 처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열린다고 하니 가해자 부모는 징계 기록이 남을까봐 매일 학교를 찾아왔고, 피해학생에겐 '사과를 받아달라'고 압박했다. B씨는 "가해자는 며칠 학교를 안 나오는 가장 낮은 징계 받고 끝났다"며 "피해자 친구는 전학을 갔다"고 했다.
학생 다수는 ‘학폭 관련 학생부 기재'가 필요하다고 봤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하 청예단)이 2016년 실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폭위 조치를 학생부에 기재해야 하나'란 질문에 89%가 "그렇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학생 인생 좌우하는 기록 부담, 처벌은 교육부와 경찰이 전담했으면"
사진=교육부 제공
일선 교사들은 '생기부 기재' 관련 딜레마를 겪는다. 생기부 기록이 학생의 미래를 좌우할지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학생기록부를 긍정적인 언어 위주로 쓰게 하는 교육부 매뉴얼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중학교 교사 C씨는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면서 생기부를 작성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생기부 작성 지침 자체가 부정적인 언어는 가능한 한 배제하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또 징계 사실이 생기부에 기록되더라도 일정기간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삭제된다.
C씨는 "징계 자체도 가장 센 게 '등교정지' 정도인데 학생들이 무서워하지 않아 효과가 없다"고 했다. 이어 "이 안에서 직·간접적으로 2차 피해를 보는 피해학생에게 학교가 해줄 수 있는 배려는 '반 분리'가 전부"라며 피해학생을 위한 상담·회복 프로그램 등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에선 교육기관인 학교에 처벌 등 사후조치를 맡겨선 '솜방망이' 처분이 반복될 거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법 개정 이후 학폭위는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 주관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가해학생 상담과 사건 조사, 사후처리는 교사들 몫이다.
고등학교 교사 D씨는 "가해학생 징계 수위 판단 등 처벌 부분은 교육부나 경찰 등 다른 기관이 맡아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학폭 근절을 명확한 목표로 한다면 생기부 기재 등에 대한 교육부·교육청 차원의 지침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